LG에너지솔루션, 항공우주·폐배터리 리사이클로 질주 이어간다

美 사우스8과 극저온 배터리 개발 NASA 프로젝트 참여 프랑스·미국서 폐배터리 리사이클 합작공장 잇따라 설립 신사업으로 글로벌 규제 대응·공급망 안정·ESG 경영 동시 추진

2025-11-12     임호동 기자
전기차용 배터리 외 항공우주 분야, 배터리 리사이클 사업 등 다양한 신사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LG에너지솔루션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일변도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항공우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미래 신사업에 힘을 더한다는 방침이다. 

◇ 美 사우스8과 극저온 배터리 개발…NASA 프로젝트 참여 

LG에너지솔루션이 항공우주용 배터리 시장 진출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2일 미국 '사우스8 테크놀로지스'(South8 Technologies, 이하 사우스8)와 '항공우주용 배터리 셀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이번 계약을 통해 항공우주용 배터리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사우스8은 전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용 액화 기체 전해질을 개발한 기업으로, 지난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24년 200대 발명품'에 이름을 올릴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협력은 미국 우주항공 및 방위 분야 선도기업인 KULR 테크놀로지 그룹과 미국 항공우주청(NASA)이 추진하는 '항공우주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KULR은 텍사스 우주위원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차세대 우주탐사를 위한 저온 리튬이온 배터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협력으로 양사가 개발하는 액화 기체 전해질 기술은 영하 60도 이하 극저온 환경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 액체 전해질은 영하 20도 부근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는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8의 ‘액화 기체 전해질’은 영하 20도 부근에서 정상적인 작동이 어려운 기존 액체 전해질과 비교해 어는점이 훨씬 낮아 우주와 같은 영하 60도 이하 극한의 저온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전해질로 물리적 충격이나 급격한 온도 변화 상황에서 안전성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만약의 경우 전지 내부의 액체 용매가 급격히 기화하면서 셀 온도를 낮추고, 기화된 전해질이 빠르게 외부로 배출된다. 전지가 작동하지 않는 '더미 셀'로 전환돼 화재 발생 위험을 현저히 줄이는 원리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극저온에 특화된 차세대 배터리 셀 설계, 최종 배터리 셀의 성능 평가와 분석을 담당한다. 사우스8은 액화 기체 전해질 및 특수 외장재 등을 활용해 최종 배터리 셀을 제작할 예정이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CTO(전무)는 "액화 기체 전해질 기술이 극한의 추운 환경에서 발생하는 배터리 성능 저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극저온 환경의 항공우주 탐사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 폐배터리 리사이클 사업도 박차 프랑스·미국서 합작공장 건설 중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리사이클 프로세스.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의 신사업은 항공우주 분야 뿐만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잇따라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글로벌 리사이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월 프랑스 1위 메탈 재활용 기업 데리시부르그(DBG)와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과 유럽 기업이 손잡은 첫 리사이클 합작 사례다. 프랑스 북부 발두아즈 지역 브뤼에르 쉬르 우아즈에 2026년 착공해 2027년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연간 2만 톤 이상의 사용 후 배터리 및 스크랩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합작법인은 사용 후 배터리와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 스크랩을 안전하게 파·분쇄해 검은 가루 형태의 중간 가공품 '블랙 매스'를 만드는 전처리 전문 공장이다. 블랙 매스는 후처리 공정을 통해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핵심 메탈로 재생산되고, 이후 양극재 생산과정을 거쳐 LG에너지솔루션 글로벌 생산시설에 최종 공급된다.

DBG는 프랑스 메탈 재활용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프랑스 전역에 200여 개가 넘는 수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회(ACEA)에 따르면 프랑스는 2024년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15%를 차지할 만큼 배터리 수요가 큰 시장이다. 향후 사용 후 배터리 자원도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일본 토요타 그룹 무역상사 토요타통상과 손잡고 미국 내 리사이클 합작법인 'GMBI'를 설립했다. GMBI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세일럼 지역에 리사이클 공장을 올해 하반기 착공 후 2026년 본격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해당 공장은 연간 최대 1만3500톤, 전기차 4만대 이상의 사용 후 배터리 및 스크랩을 처리할 수 있다.

GMBI는 LG에너지솔루션 미국 공장의 토요타향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 스크랩, 토요타통상이 수거한 북미 지역 사용 후 배터리 등을 활용해 블랙 매스를 생산한다. 생산된 블랙 매스는 별도 후처리 공정을 통해 메탈로 추출되고, 양극재 및 배터리 제조 공정을 거쳐 토요타 자동차의 전기차 배터리로 재활용된다. 배터리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전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자원 선순환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 협력을 통해 안정적 배터리 공급망 구축은 물론 유럽 배터리 리사이클 규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차별화된 기술 및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최고의 고객가치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전기차 케즘 장기화에 사업 다각화 불가피

LG에너지솔루션이 항공우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신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력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케즘(성장 정체기)'에 빠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정체에 따른 대응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업 강화하며 올해 3분기 실적을 끌어올리며,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ESS용 배터리와 같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항공우주 배터리는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꼽힌다. 극한 환경에서 작동해야 하는 만큼 기술 난이도가 높고, 안전성과 신뢰성이 최우선이다. 시장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제품당 단가가 높고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수익성이 좋다. 민항공, 우주탐사, 방위산업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 중장기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은 환경 규제 대응과 원재료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사업이다. 2024년 시행된 EU의 '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2031년부터 유럽 내 배터리 원재료 재활용 비율은 코발트 16%, 리튬 6%, 니켈 6%로 의무화된다. 2036년부터는 코발트 26%, 리튬 12%, 니켈 15%로 기준이 더 강화된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핵심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은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고, 가격 변동성도 크다.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재생 원재료를 활용하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원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12월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기업인 라이사이클에 약 600억 원을 투자했고,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법인 설립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일찍부터 리사이클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이번 프랑스, 미국 합작법인 설립으로 유럽과 북미에 리사이클 거점을 확보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배터리 업체들이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항공우주, 리사이클링뿐 아니라 선박, 건설기계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배터리 적용처를 넓혀가는 게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