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銀, 중기대출 연체율 ‘16년 만에 최고’… 4대 은행도 ‘부실 확산’

장기간 내수부진 중기 부실로 이어져··· 중소기업 대출 건전성 '빨간불'

2025-11-05     김학형 기자
주로 기업 대출을 취급하는 IBK기업은행의 연체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이미지=픽사베이, 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의 부실이 금융권의 핵심 리스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의 ‘선행 지표’로 불리는 IBK기업은행의 연체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치솟으며 '경고등'이 켜졌다. 장기간 이어진 내수 부진에, 미국의 대외 관세 조치 등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영세 중소기업 중심으로 부실이 확산하는 조짐이다. 핵심 국책은행에서부터 건전성 경고등이 켜진 만큼, 국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00%로, 지난 2009년 1분기(1.02%)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전체 기업대출 연체율은 1.03%로, 이는 2010년 3분기(1.08%) 이후 15년 만의 최고치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이 전체 대출의 약 80%를 차지한다.

통상 시중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0%대 중반에서 0.5% 안팎을 '안정적'으로, 0.8%를 넘으면 '경고등', 1% 이상이면 '위험' 신호로 간주한다. 즉, 1%대 연체율은 장기간 이어진 내수 부진의 그림자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부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대외 관세 조치와 같은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수출입 관련 기업뿐 아니라, 내수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전 업종에 걸쳐 연체 증가세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주요 시중은행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3분기 중기대출 연체율은 평균 0.53%로, 2017년 1분기(0.59%) 이후 약 8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은행별로는 하나·우리은행(0.56%), 국민은행(0.54%), 신한은행(0.45%) 순이다. 비록 기업은행보다는 수치가 낮지만, 대형 시중은행들마저 중소기업 대출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그만큼 중소기업 자금난이 전방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도소매업·서비스업 등 내수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서 연체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만기 연장을 통한 이른바 ‘리볼빙(돌려막기) 대출’에 의존해 온 구조적 취약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고 내수 침체까지 겹치면서, 당장의 고통을 만기 연장으로 버텨왔던 영세 사업자와 제조 하청 기업들이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빚의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납품 단가 압박에 시달리는 제조 하청 기업들의 부실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관계자는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연체율은 추가적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는 금융권 전체의 중소기업 신용 리스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은행권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 적립을 확대하고 대출 심사를 한층 강화하는 조치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명목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기 시작하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고금리의 비은행 금융권(2금융권)'으로 몰리면서 자금 경색이 재차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리스크의 전이 가능성이다. 정책금융기관인 기업은행에서 부실의 징후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드러났다는 것은 중소기업 부실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금융 전문가들은 "기업은행에서 시작된 부실 확산이 시중은행을 넘어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전이되는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연체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내년 초에는 중소기업 대출 시장 전반의 종합적인 리스크 점검 및 구조조정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돈줄 경색'과 '부실 폭탄' 사이에서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인 중소기업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