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꽂으면 끝’··· 베트남 스키밍 범죄에 여행객 비상
여행 중 카드 정보 복제 피해 잇따라··· 관광객 노린 해외 범죄 급증 단말기 외관 확인·비접촉 결제로 예방 가능··· “이상 결제 즉시 신고해야”
# 최근 베트남을 여행하던 소비자 A씨는 자신이 있지도 않았던 필리핀에서 카드 결제가 시도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카드를 자세히 확인해 보니 칩 부분이 앞뒤로 긁혀 훼손된 상태였다. A씨는 “여행 내내 가방을 지니고 다녔고, 방을 비운 건 수영하던 잠깐뿐이었는데 카드 칩이 앞뒤로 긁힌 상태였다”며 “결제 내역을 확인하니 내가 있던 베트남이 아닌 필리핀에서 거래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A씨는 카드사에 연락했고, 카드사는 스키밍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즉시 거래를 정지시켰다.
스키밍(Skimming) 범죄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잇따르고 있다. 스키밍은 카드 단말기나 ATM에 복제 장치를 몰래 부착해 카드 정보를 빼내는 범죄다. 카드 뒷면의 마그네틱선이나 앞면의 칩 정보를 읽어 복제카드를 만든 뒤, 제3국에서 부정 결제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범죄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초소형 장치를 ATM이나 주유기, 편의점 단말기 등에 설치하고, 비밀번호 입력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작은 카메라를 함께 부착하기도 한다. 한 번 스캔된 정보는 몇 초 만에 복제돼 다른 나라에서 결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범죄는 주로 관광객이 많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동남아, 남미, 유럽 일부 지역 등 여행객이 자주 이용하는 현금인출기와 무인결제 단말기가 주요 표적이다. 실제로 경찰 자료 등에 따르면 해외 카드 부정사용 신고 중 상당수가 스키밍이나 카드정보 유출과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여행 시 의심스러운 단말기 사용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카드 삽입구 주변이 불룩하거나 색상이 다른 경우, 키패드가 흔들리는 경우는 장치가 부착됐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비접촉(NFC) 결제 기능을 이용하거나, 카드 대신 휴대폰의 간편결제 앱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ATM 사용 시에는 한 손으로 비밀번호를 가려 입력해야 하고, 주변에 작은 렌즈나 부착물이 없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출국 전에도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카드사 앱에서 ‘해외 결제 차단 설정’을 해두고, 결제가 필요한 시점에만 일시적으로 해제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카드사에서는 ‘이상 거래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상 결제 시도 즉시 알림을 받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여행용 카드의 경우 출국 전 사용 한도와 이용 가능 국가를 미리 지정해두면 부정 사용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실제로 피해를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즉시 카드사에 연락해 거래를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후 카드사에 사고 접수를 하고, 현지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신고서를 확보해야 한다. 이 신고서는 귀국 후 금융감독원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거나, 카드사에 피해보상 절차를 신청할 때 필요하다. 해외 카드 부정사용 이의제기 및 피해 상담은 카드사와 금감원 고객센터를 통해 가능하다. 카드사가 요구하는 경찰 신고서, 거래 내역 캡처본 등 증빙을 함께 제출하면 피해보상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개인 부주의만으로 돌리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도 지적한다. 현지 가맹점이 오래된 단말기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보안이 취약한 ATM이 방치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해외 결제 패턴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등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시밍(Shimming)’이라는 변형된 범죄 수법도 등장했다. 칩이 달린 카드 안쪽에 얇은 회로 기판을 삽입해 정보를 빼내는 방식으로, 외관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탐지가 더욱 어렵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키밍 범죄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며 “여행객 스스로 단말기 상태를 점검하고, 의심스러운 결제 시도는 즉시 신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은 기술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비자 경각심이 함께 작동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