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급증, 전력망 건설은 느림보...에너지고속도로는 되는걸까?

송전선 확보 지연 출력제한·접속대기 심화…국가산업 격상 필요 에너지 고속도로 앞서 전력계통혁신 필요 지역 불균형도 해소해야

2025-10-22     진경남 기자
전력망 확충이 지연되면서 정부의 에너지고속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국내 전력망 확충 속도가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산된 전력이 계통에 연결되거나 탈락하는 '출력제한'과 '접속대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를 늘리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전력망 확충이 뒤따르지 못하면 전력 수급 불균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송전망 건설 절반 이상 지연 '에너지고속도로' 차질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전력망 건설 사업의 절반 이상이 지연되거나 지연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한전이 추진 중인 송전망 건설사업의 55~56%가 지연 또는 지연 예상 상태로 보고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2038년까지 송·변전 설비 신·증설 54건을 단계별로 완료해 전남·전북·제주 등 발전 중심지와 수도권 수요지를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전력계통 혼잡 완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의 분산형 송전체계 전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30건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연 사유로는 주민 수용성 부족, 인허가 절차 장기화, 환경영향평가 지연, 부지 확보 난항 등이 꼽힌다. 특히 새만금·신안 해상풍력 연계선 등 핵심 사업은 정부의 2030 재생에너지 목표보다 늦은 2031~2033년에야 완공될 전망이다.

한전이 제출한 '송전선로 건설계획 대비 지연 현황'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집적지와 발전력 인출에 직접 연관된 주요 송·변전 사업들의 준공 목표가 2030년 이후로 미뤄지거나 지연(지연예상 포함)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송전망 부족으로 전력망에 연결되지 못한 재생에너지 접속 대기량은 8.9GW에 달한다. 이는 원전 9기분 생산 전력이 계통에 흘러들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접속 대기 물량의 97%가 태양광발전이며, 대부분 전남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전력망은 수도권 중심의 단방향 송전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전남·제주 등지에서 생산된 전력이 수도권으로 원활히 송전되지 못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2023년 한 해에만 181건의 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송전망이 제때 깔리지 않으면 아무리 발전소를 세워도 전기를 팔 수 없다"며, "한전이 송전망 사업을 국가전략사업으로 격상해 인허가 단축 및 공공참여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재생에너지 확대 위해 안정적인 전력망 필수

정부도 재생에너지 확산 과정에서 송전망이 부족하지 않도록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8월 전력계통혁신 정책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접속 지연 해소와 계통 안정성 제고를 추진 중이다.

올해 안으로 전북·전남·경북 등 접속대기 437MW 물량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인버터의 지속운전 성능 기준 강화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계통 안정성 보장하고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및 변전소 입지 조기 확정, 자재 확보 등 공정 지연 해소 대택을 시행한다. 또한 전력거래소·한전·지자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지역 맞춤형 송전망 구축 계획 추진한다.

한전도 5년간 10조원을 투입해 배전망을 증설하고, 분산형 에너지 체계 구축을 정책적으로 병행 중이다. 제주와 호남 지역에서 민간 에너지저장장치(ESS) 기반의 지역유연성서비스 시범사업 추진하고, 배전망운영자(DSO) 제도 도입과 민간협력 확대를 통해 지역 단위 전력 거래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런 정부의 송전망 정책들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지역 분산형 전력 체계로의 전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통 안정성 강화를 통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려는 방향으로 전개한다는 의미다.

다만 송전망 한계를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일부 전문가들은 '지자체 재생에너지 할당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각 지방정부가 일정 수준의 재생에너지 생산·소비를 책임지는 제도로 수도권-비수도권 간 전력 불균형 완화 및 송전망 의존도 감소 효과 기대할 수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수록 송전·배전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진다"며 "안정적인 전력망 체계 없이는 친환경에너지 전환도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