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탄소세 앞두고 친환경 선박 7.7%뿐··· K조선 기회의 문 열린다
선주사, 탄소배출 1t당 100~380달러 부담··· 발주 패턴 급변 한국 조선 빅3, LNG·전기추진·차세대 연료선 기술 앞서 중국 조선 저가 공세에도 한국 조선업 ‘친환경 카드’로 방어
국제해사기구(IMO)가 지난 4월 해운업계 첫 탄소세 도입을 승인하면서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으로 대표되는 조선 3사가 친환경 선박 수주 특수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오는 2027년 상반기부터 총t수 5000t 이상 선박에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t당 100~380달러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IMO 탄소세는 글로벌 해운업계에 연간 15조원의 경제적 부담을 안기게 된다. 하지만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기술 우위를 보유한 한국 조선업계에는 오히려 새로운 성장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조선 3사가 보유한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다양한 친환경 연료 기술이 IMO 탄소세 시행과 함께 본격적인 수주 급증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글로벌 선대에서 친환경 선박 비중이 7.7%에 불과한 상황에서 대규모 선박 교체 수요가 예상되는 만큼, 기술력에서 앞선 한국 조선업계의 ‘골든타임’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HD현대, LNG·메탄올 시장서 압도적 우위 입증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이미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며 IMO 탄소세 수혜의 최대 주자로 떠올랐다. 2025년 수주한 컨테이너선 44척 중 60%인 26척을 LNG 이중연료 추진 사양으로 확보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특히 6월 아시아 선사로부터 수주한 1만59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컨테이너선 8척(2조4000억원 규모)에 모두 LNG 이중연료 추진 엔진을 탑재한 것은 HD현대의 기술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로벌 발주 잔량 1377척 기준으로 LNG연료 선박이 970척(73%)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HD현대의 시장 장악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메탄올 분야에서도 HD현대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3척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다. 2023년 덴마크 머스크에 인도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로라 머스크호'는 기존 연료 대비 80% 이상 탄소 배출량 절감 효과를 입증해 글로벌 선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HD현대는 미래 기술 확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암모니아 연료전지 기반 무탄소 전기추진 시스템과 암모니아 독성가스 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줄이는 기술까지 개발하며 차세대 친환경 선박 기술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HD현대미포가 2023년 유럽 선사와 체결한 세계 최초 암모니아 추진 가스 운반선 건조 계약이 그 성과다.
한화오션·삼성중공업도 차별화 기술로 수주 확대
한화오션은 ‘ESG HOST 2030’ 전략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저탄소·무탄소 연료 추진 친환경 선박을 100% 건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유일의 LBTS(Land Based Test Site) 설비를 갖춘 것이 한화오션만의 차별화 포인트다.
이 설비는 각종 추진 시스템 성능을 사전 검증하기 위해 육상에 설치한 시험설비로, 상용급 연료전지, 리튬이온배터리, 신개념 배터리, 암모니아 추진 등 탈탄소 친환경 연료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특히 SK와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 '불타지 않는 ESS'는 선박용 에너지저장장치의 화재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혁신 기술로 평가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수익성 중심의 선별수주 전략으로 2025년 수주 선박의 86%를 친환경 선박으로 채우며 품질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8월 오세아니아 선주들로부터 LNG운반선 6척(2조1000억원)을 수주하여 연간 목표의 49%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삼성중공업의 핵심 경쟁력은 독보적인 부유식 LNG 생산설비(FLNG) 기술이다. 세계 최초 LNG-FPSO 개발 기술력으로 대형 FLNG 3기를 성공적으로 건조했으며, 최근 신규 FLNG 2기를 추가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2024년 노르웨이 DNV선급으로부터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선에 대한 기술 인증을 획득하며 차세대 무탄소 연료 기술 상용화 기반도 마련했다.
192조원 수주잔고··· 올해 하반기 수주 확대 전망
조선 3사의 친환경 선박 수주 확대 전망을 뒷받침하는 것은 탄탄한 수주잔고와 구조적 성장 요인들이다. 조선 3사의 수주잔고는 1분기 기준 192조원을 돌파해 향후 3~4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로, 지난 2008년 대비 83.1% 수준의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 환경도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 조치 이후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한국의 수주 비중이 2024년 2분기까지 중국이 독식했던 상황에서 2025년 2분기에는 40.9%까지 상승했다. 이란-이스라엘 분쟁 여파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스팟운임이 2주 만에 83.1%(사우디-일본 구간) 급등하는 등 탱커 시장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특히 2027년 IMO 탄소세 시행을 앞두고 글로벌 선사와 선주들이 향후 2년간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을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한국 조선업계에게는 최적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15년 이상 된 노후선박의 교체 수요와 맞물려 대규모 친환경 선박 발주가 예상된다.
업계는 2030년대 중반부터 전통 연료선들이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암모니아·e-메탄올 준비선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 선사 기준으로만 584척의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예상된다. 이에 따른 선박금융 수요는 47~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도 조선업계의 친환경 전환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조선 초격차 기술 개발에 2600억원을 투입해 친환경 선박(1700억원), 디지털 전환(700억원), 자율운항선박(200억원)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친환경선박 전환에도 2442억원을 투입해 친환경선박 45척 건조와 30척 개조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중국의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수주한 선박의 평균 가격이 중국보다 20~30% 높은 것은 기술력에서의 실질적 격차를 보여준다”며 “IMO 탄소세 시행으로 친환경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에서 조선 3사의 수주 확대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