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소비 급감 추석연휴 블랙아웃 위험... "ESS 확충해야"

봄가을 전력수급 불균형 계통 안정성 위협…출력제어 급증 ESS·송전망 확충 등 남는 전력 활용할 수 있는 대응 필요

2025-09-18     진경남 기자
올가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력 수급 불안정이 가시화되자 정부가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출력제어를 감행하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역대급으로 긴 올가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력 수급 불안정이 가시화되자 정부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전원 전반에 대한 출력제어에 나섰다. 업계는 전력당국이 가까스로 수급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대응 여력은 갈수록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스페인 대정전(블랙아웃)과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전력 많아도 문제…블랙아웃 위험까지 있어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에서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가을철 경부하기 대비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한 비상모의 훈련을 했다. 

전력은 생산량과 소비량이 실시간으로 일치해야 정상적인 주파수와 전압을 유지할 수 있다.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도 발전소의 발전기부터 각 가정의 크고 작은 전자 기기 등이 정상 범위보다 더 작동하며 과열되는 일이 벌어지며 계통 불안정으로 블랙아웃 위험이 커진다. 반대로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적으면 각종 기기의 작동 효율이 떨어져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 즉 부족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된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수요가 적은 봄·가을 재생에너지를 과잉공급하거나 날씨에 따른 변동성이 심해 전력계통 안정성에 위협이 되는 경우, 전기 수급을 맞추기 위해 출력을 줄이거나 전력계통에 탈락시키는 출력제어를 사업자에게 지시한다. 간헐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특성상 주말 또는 연휴 등으로 전력 수요가 감소하면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스페인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도 재생에너지 발전의 과도한 쏠림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스페인은 평소 전력 생산의 약 6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지만 정전 당일에는 태양광발전 비중이 80%에 육박하면서 전력망이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과거엔 제주도에만 한정적으로 출력제어를 지시했지만 2023년부터는 육상에도 출력제어 조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23~2024년 발생한 신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958건, 이 중 65%가 태양광이었다. 올 상반기 출력제어량은 164.4GWh(기가와트시)로 지난해 연간(13.2GWh)의 12배가 넘는다. 원전과 연료전지까지도 상반기 53차례 제어를 당했다.

전기를 실어나를 송전망 확충이 뒤따르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설비는 2015년 2.5GW에서 올해 초 27.4GW로 늘었지만, 송전선로는 같은 기간 8.5% 늘어난 데 그쳤다. 재생에너지의 전기생산량은 10배 늘었지만 이를 보낼 길은 그대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계통 안정성 저하가 심각해졌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에 따라 출력제어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고립된 전력구조를 지닌 한국의 경우 출력제어가 빈번하게 이뤄질수록 정전 위험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에서 관련 기관과 가을철 경부하기 대비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한 비상모의 훈련을 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ESS·송전망 확충 등 대응 필요

전력당국은 이달 중 가을철 경부하기 계통 안정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신속한 재생에너지 보급·확대를 위해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개설 등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속에서도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인프라가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태양광과 풍력 등 간헐성 전원이 급증하게 되면 주파수 안정성, 무효전력 보상, 전압 유지 등 전통적 중앙발전 중심 계통 운영체계로는 대응에 한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태양광·풍력 대상 출력제어율을 연간 3%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며 분산형 전력 생산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를 위해 태양광·풍력 발전량 예측제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가상발전소(VPP)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며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능력을 제고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 단지인 전남 신안 솔라시티는 대형 ESS가 설치돼 낮 시간대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고, 태양광이 멈춘 저녁에는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간헐성을 극복 중이다.

현재 국내에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로 인한 피해를 보상 제도는 없으나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이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통해 사업자에게 출력제어 보상을 제안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사업자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은 유연성 자원을 통해 전력망 재생에너지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 덴마크 등 유럽 주요국은 인접국과 국경 간 연계송전망으로 전력 수출입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독일 등은 ESS·양수발전 활용해 전력망 변동성을 완화하고 있다.

전력망 확충도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재생에너지 확산 뿐만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인 에너지고속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

한전은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 따라 2023년 기준 송전선로 3만 5000km, 변전소 906곳을 2038년까지 각각 6만 1000km, 1297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총 72조 8000억원을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