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신한銀, 나란히 퇴직연금 ETF 2조 돌파… ‘양강 구도’
주요 시중은행들이 퇴직연금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라인업을 대폭 확충하고 관련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고객 유치 경쟁에 반전을 꾀하기 위해서다. 특히,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나란히 판매 잔고 2조원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달 초 퇴직연금 ETF 판매 잔고가 2조원을 넘어섰다. ETF 상품 라인업을 은행권 최다 수준인 216개로 확대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상품 개수만 늘리기보다 고객 선호도가 높은 해외지수 추종 ETF부터 원자재·채권·대체자산 ETF 등에 이르는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했다.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ETF에도 투자할 수 있다.
지난 8일부터는 퇴직연금 ETF 투자의 장점을 강조하는 고객 대상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마케팅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해당 이벤트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나 확정기여형(DC) 가입자가 모바일뱅킹 앱 ‘신한 SOL뱅크’를 통해 ETF 상품을 매수하면 참여할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 퇴직연금 ETF 잔고 2조원 달성은 고객의 장기수익률 제고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상품과 디지털 경쟁력을 기반으로 든든한 노후 자산 파트너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신한은행보다 앞선 지난 7월에 퇴직연금 ETF 판매 잔고가 2조원을 뛰어넘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21년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ETF를 도입한 시장 선도자다. 작년 11월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약 8개월 만에 2배 넘게 성장했다.
현재 제공 상품은 159개로, 중장기 투자 성과를 겨냥한 포트폴리오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주요 지수 추종 상품을 중심으로 구성해 퇴직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은 퇴직연금 ETF 도입 초기부터 고용노동부와 퇴직연금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투자 문화 확산에 공을 들여왔고, 이번 2조원 돌파는 그간의 노력이 가시화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나은행 연금사업단 관계자는 "고객의 소중한 연금자산이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모든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연금전문 1등 은행’답게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은행)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보통 원리금보장형을 선호하니까, (예전에는) 투자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투자를 별로 권하지 않았다”라며 “요즘엔 (퇴직연금 ETF에 관해) 먼저 묻는 고객도 있고, 추천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이 퇴직연금 ETF 경쟁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시장의 판세 변화가 자리한다.
그동안 은행권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지만, 작년 10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른바 ‘퇴직연금 갈아타기’가 손쉬워지면서 자금이 이동하고 있어서다.
반면, 증권사들은 ETF·펀드 등 시장형 상품의 공격적인 라인업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타 업권의 퇴직연금 자산을 흡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퇴직연금 적립금은 445조6284억원으로, 점유율은 은행권(약 52.9%)이 증권사(25.3%)보다 높았으나 같은 기간 은행권에서 1조1847억원이 유출됐고, 증권사로 1조3055억원이 유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