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브라질 업체 잇단 초대형 계약 ···“K해운 부활 신호”

5월 6360억원 계약에 이은 추가 계약··· “안정적 수익기반 확보” 벌크선 중심 장기계약 확대, 한진해운 사태 이후 10년 만에 재도약 2045 넷제로, 70척 친환경선 확보··· 글로벌 해운시장 판도 재편

2025-09-12     신종모
HMM의 건화물선(Dry Bulk) Global Trust호./사진=HMM

HMM이 브라질 최대 광산업체 발레(Vale)와 4300억원 규모의 장기운송계약을 추가 체결하며 한국 해운업 복원의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 계약은 지난 5월 체결한 6360억원 계약과 합쳐 총 1조660억원의 안정적 수익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12일 HMM에 따르면 오는 2026년부터 2036년까지 10년간 진행되는 이번 계약으로 HMM은 총 5척의 벌크선을 투입해 철광석을 운송한다. 발레와 같은 글로벌 메이저 화주와의 연이은 대형 계약은 2016년 한진해운 사태 이후 침체됐던 한국 해운업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HMM의 벌크선 확대 전략은 컨테이너선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근본적 변화에서 비롯됐다. 현재 46척(634만DWT)인 벌크선대를 2030년까지 110척(1256만DWT)으로 2.4배 확대한다는 계획의 핵심은 예측 가능한 수익 창출에 있다.

벌크선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시황 변동성에 대한 내성이다. 일반적으로 5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운영되는 벌크선은 컨테이너선과 달리 안정적 현금흐름을 보장한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컨테이너 운임이 전년 동기 대비 27% 하락한 상황에서도 HMM이 매출 5조4774억원, 영업이익률 15.5%를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벌크선 사업의 기여가 크다.

벌크선 시장 자체도 올해 긍정적 전망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기부양책 효과와 함께 벌크선 선복량 증가율이 3% 내외로 예상되면서 시황 개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컨테이너선은 선복량 증가율이 5.5% 이상으로 예상돼 운임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HMM 관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 부문과 함께 벌크 부문도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 창출과 성장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23조 투자로 글로벌 해운 강국 복귀 청사진

HMM의 야심은 지난해 발표한 ‘2030 중장기 투자계획’에서 구체화됐다. 총 23조5000억원을 투입해 컨테이너선에 12조7000억원, 벌크선에 5조6000억원을 배정한 이 계획은 한국 해운업 역사상 가장 대규모 투자다.

전체 투자금액의 60% 이상인 14조4000억원을 친환경 경영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기존 2050년 목표였던 ‘넷제로’ 달성을 2045년으로 앞당기며 약 70척의 친환경 선박을 확보할 계획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동시에 친환경 선박 시장의 선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컨테이너 사업에서는 현재 92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에서 2030년까지 155만TEU로 선복량을 확대한다. 벌크 사업은 현재 634만DWT에서 1256만DWT까지 선대를 확장하여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여기에 통합 물류사업 확대를 위해 신규 터미널 및 시설 투자에 4조2000억원을 별도 배정했다.

HMM의 초저온 냉동 컨테이너 ‘울트라 프리저(Ultra Freezer)’./사진=HMM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결성·친환경 전환으로 해운업 미래 선점

HMM은 지난 2월부터 일본 ONE, 대만 양밍과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결성해 새로운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기존 ‘디 얼라이언스’에서 독일 하팍로이드가 탈퇴한 후 새롭게 구성된 3사 동맹체제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세계 1위 선사 MSC와 유럽 항로에서 선복교환 협력을 체결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26개 항로에서 30개 항로로 서비스를 확대하며, 특히 유럽 항로는 8개에서 11개로 늘어난다. MSC-머스크의 2M 동맹 해체(올해 예정)로 글로벌 해운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HMM이 새로운 포지션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HMM의 가장 혁신적인 도전은 해운업계의 친환경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투자 계획 중 14조4000억원을 친환경 경영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대응을 넘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로 해석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30년까지 국제해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20% 이상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HMM은 이 목표보다 5년 앞선 2045년 넷제로 달성을 선언하며 업계 선도기업으로서의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약 70척의 친환경 선박 확보 계획은 메탄올, 암모니아 등 대체연료 사용 선박과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을 갖춘 차세대 선박을 포함한다. 이는 글로벌 해운업계가 직면한 탄소중립 전환 압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해운업계서 K해운 위치 변화

현재 글로벌 해운시장은 MSC(19.9% 점유율), 머스크(15.5%), CMA CGM(13.2%), 코스코(11.5%) 등 상위 4개사가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HMM은 2.8% 점유율로 8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투자와 사업 확장으로 점유율 상승을 도모하고 있다.

벌크선 시장에서 HMM의 약진은 더욱 주목된다. 글로벌 벌크선 선대가 2024년 10억DWT에 도달하는 상황에서 HMM이 2030년까지 1256만DWT 규모로 확장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의미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번 발레와의 추가 계약은 HMM이 단순한 운송업체에서 벗어나 글로벌 자원 물류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 해운업이 한진해운 사태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