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노조 “100일째 사장 공석··· ADEX 2025 국가 망신 위기”

“최고책임자 없는 기업”··· 국제무대 참가 초유 사태 대행 체제로 국제 무대 참가 불가피··· 방산 수출·국제 신뢰도 하락 ADEX 2025 앞두고 수출 협상·KF-21 사업 줄줄이 지연

2025-09-11     신종모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자리가 100일 째 공석으로 있으며, 국제 방위산업 행사가 차질을 빚을 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미지=픽사베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강구영 전 사장 조기 사임 후 100일째 사장 공석을 이어가면서 오는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에서 국가적 체면 실추가 현실화될 위기에 처했다. 국내 최대 방산업체가 대표이사 없이 ‘대행 체제’로 국제 행사에 참가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한국 방산업계의 국제적 신뢰도 추락과 수출 전략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KAI의 사장 공백 사태는 이재명 정부 출범과 직결돼 있다. 강구영 전 사장은 지난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돼 올해 9월까지 임기가 남아있었지만, 이 대통령 취임 첫날인 6월 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KAI를 감사 대상으로 지목하며 가한 압박이 강 전 사장의 조기 퇴진을 유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AI 노동조합은 11일 성명서를 통해 “현 정권과 여당이 KAI를 감사 대상으로 지목하며 사장을 조기 퇴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로 KAI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거쳐간 8명의 사장들 대부분이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이른바 ‘낙하산 인사’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오는 10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ADEX 2025에서 터질 전망이다. 35개국 600여 개 업체가 참가하는 이번 전시회는 300억달러(41조7500억원) 규모의 거대한 비즈니스 장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김동관 부회장, LIG넥스원의 신익현 대표 등 경쟁사 최고경영진들이 직접 나서는 상황에서 KAI만 차재병 부사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참가하게 된다.

노조는 “ADEX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전 세계 30여 개국 정부 대표단과 주요 방산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수출 계약과 전략 협력을 논의하는 국제 무대”라며 “대행 체제로 참가한다면 국제 신뢰 추락과 국가적 망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해외 주요 고객 및 협력사들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와의 만남을 기대하는데 대행은 본질적으로 최종 책임과 결정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수출 협상에 치명적 장애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 차질 현실화··· 2분기 매출 감소세

사장 공백의 부작용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KF-21 양산 준비, FA-50 수출, 수리온,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등 핵심 사업들이 줄줄이 지연되면서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수천억원 규모의 수출 협상들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현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으며, 주가 역시 수출 일정 차질 우려가 반영되며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장 인선 지연 등을 이유로 KAI 사장 선임을 계속 미루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KAI 지분 26.41%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윤희성 전 행장이 지난 7월 퇴임한 이후 공석 상태다. 통상적으로 수출입은행장과 방위사업청장 인선이 마무리된 후 KAI 사장 인선이 진행되는 관례를 고려할 때, 신임 사장 선임은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노조  “사장 선임권 달라” 극단적 제안

상황이 심각해지자 KAI 노조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노조는 “정부가 조속한 인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 권한을 노동자에게 위임하라”며 “노동조합은 조합원과 함께 KAI의 미래를 책임질 진정한 리더를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직접 사장 선임에 나서겠다는 극단적 제안을 내놓은 것은 정부의 인선 능력에 대한 불신과 함께 더 이상 사장 공백을 지켜볼 수 없다는 절박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노조는 또 “이는 단순히 회사 내부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방산 수출 확대 전략에 차질을 빚는 국가적 위기”라며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항공우주 업계에서는 ADEX 2025를 놓치면 한국 방산업계가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ADEX는 2년마다 열리는 아시아 최대 방산 전시회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2027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그 사이 경쟁국들이 한국의 시장 점유율을 가져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올해 ADEX에는 처음으로 우주·도심항공교통(AAM) 신기술관이 마련되고, 2023년 294억달러였던 수주·상담 실적이 3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KAI의 ‘대행 체제’ 참가는 국가적 손실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며 “ADEX 2025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KAI 사장 인선을 조속히 마무리하지 않으면, 한국 방산업계는 국제 무대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추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