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소액결제 피해 8000만원 넘어… 경찰 경고 묵살 ‘늑장 대응’ 논란까지
1일 경찰 경고 했으나 무시, 5일 집중 조치… 초동조치 미흡 미확인 기지국 활용한 해킹으로 가닥… 국내 첫 신종 수법
경찰이 KT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액결제 해킹 사건에 대해 10일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피해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의 경고를 무시한 KT의 늦장 대응이 드러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통신망 보안에 허점을 드러낸 것은 물론, 고객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 늘어난 피해 건수와 피해액… 더 심각한 것은 KT의 안일한 대응
10일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9일 오후 6시까지 접수된 KT 소액결제 피해 건수는 총 124건으로, 피해액은 8060만원에 달한다.
접수된 사고 건수는 광명경찰서 73건(4천730만원), 금천경찰서 45건(2천850만원), 부천소사경찰서 6건(480만원) 등이다. 불과 나흘 전인 5일 집계(74건)보다 50건 넘게 늘어난 수치다.
피해자는 모두 KT 이동통신 가입자로, KT 전산망을 기반으로 한 알뜰폰 요금제 고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광명·부천, 서울 금천구에서 집중 발생했으나, 사건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기도 과천· 서울 영등포 등지에서도 비슷한 피해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 지역과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확산된 배경에 KT의 부실한 대응이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첫 신고 접수 후 1일 KT에 연쇄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KT는 “해킹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의 제보를 묵살했다.
이후 사고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자 KT는 지난 5일 새벽부터 비정상적인 소액결제 시도를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KT의 발표에 따르면, 해당 조치 이후 추가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KT가 경찰의 제보가 있었던 1일부터 해당 조치를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보안 전문가는 “경찰이 이미 징후를 포착하고 KT에 알렸는데도 이를 무시한 건 통신사로서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며 “결국 초동 대응 실패가 사태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 미확인 기지국 통한 신종 수법… 고객 불신도 커진다
한편, KT는 8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이번 소액결제 사태를 사이버 침해 사실로 신고했다. 신고 접수 이후 KISA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즉각 KT에 자료 보전 명령했으며, 이날 호우 10시 50분 KT 사옥을 방문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보안당국은 과기정통부 위원 2인, 한국인터넷진흥원 4인, 민간 위원 6인으로 구성된 민간조사단을 꾸려 해당 건을 조사하고 있다.
민관합동조사단 조사의 9일 발표에 따르면, 피해 지역 통화 이력에서 KT 관리망에 없는 ‘미상 기지국 ID’가 확인됐다. 해커가 초소형 가상 기지국을 설치해 이용자들의 트래픽을 가로챈 뒤,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새벽 시간대 반복 결제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범행은 상품권 구매, 교통카드 충전 등 비교적 소액 결제를 노렸다. 고객이 자는 새벽 시간대를 활용해 인지하지 못한 사이 결제가 이뤄졌다. 국내에서 이런 유형의 해킹은 처음 발생한 사례다.
다만 KT는 9일 입장문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불법 기지국에 연결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보안 시스템 신뢰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KT는 입장문을 통해 “고객 피해로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경찰 수사와 정부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또 KT는 소액결제 피해와 관련해 100번 또는 24시간 운영중인 전담고객센터(080-722-0100)를 통해 고객 문의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며, 소액결제 이용 내역 확인 및 차단 설정 방법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와 소비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보여주기식 대응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일반 소비자들 역시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에 이어 이번엔 KT로 안전한 통신사가 없다"며 성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