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최초 쇳물·철강보국 창업정신··· 대원 장경호 50주기 추모
1929년 대궁양행··· 동국제강·동국산업·한국철강 등 철강산업 태동의 주역 범동국제강그룹, 창업주 추모법회 개최··· "민족자본 일으킨 선각자" 기려 장세주 회장 “일제강점기, 6·25 속 업을 통해 민족과 국가에 보은한 선각자”
한국 철강산업의 토대를 놓고 모든 재산을 불교 발전에 헌정한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별세한 지 50년이 흘렀다.
동국제강그룹은 창업주 50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마포구 소재 대한불교진흥원 3층 대법당 다보원에서 ‘대원 장경호 거사 50주기 추모 및 대한불교진흥원 창립 50주년 기념 법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동국제강그룹을 비롯한 범동국제강그룹 17개 기업 및 1개 단체 경영진 78명이 참석했다.
1899년 부산에서 태어난 대원 장 회장은 1929년 '대궁양행'으로 사업을 시작해 1954년 민간 최초로 쇳물을 일관 생산하는 동국제강을 설립, 한국 철강산업 태동의 주역이 됐다. 또한 1975년 별세 직전 모든 사재 30억원(현재 가치 약 5천억원)을 사회에 헌정해 대한불교진흥원 설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일제강점기 ‘철강보국’ 정신으로 민족자본 일궈
장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했다. 대궁(大弓), 남선(南鮮), 조선(朝鮮), 동국(東國) 등 그가 설립한 모든 기업의 사명은 민족과 국가를 상징하는 이름들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가운데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던 사업가로, 6·25 전쟁 직후 '철강보국'의 창업정신으로 민간 철강산업을 일으켰다.
동국제강은 부산 용호동 21만평 규모 갯벌에 부산제강소를 세워 일관 철강생산 단지를 구축했다. 국내 최초로 용광로·전기로 시대를 열었고 와이어로드, 후판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70년대 초에는 100대 법인 중 중화학공업 기업 매출 순위 3위(공기업 제외)까지 성장하며 대한민국 철강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동국산업그룹과 한국철강그룹이 2000년 계열분리된 것도 모두 장 회장의 동국제강그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 재산 사회헌정··· 불교 현대화와 노사화합 유산 남겨
장 회장의 진면목은 불교계에서 더욱 빛났다. 20대 때 불교에 귀의한 후 사업 성공 후에도 수행과 참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서보급사(1967년), 대원정사(1970년), 불교회관·불교교양대학(1973년) 등을 차례로 설립해 현대 불교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무엇보다 1975년 9월 9일 별세 직전 "국가와 사회,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본인 명의의 모든 사유재산을 한국불교의 중흥사업을 위해 내어놓겠다"는 서신과 함께 모든 사재를 나라에 헌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설립된 대한불교진흥원은 1990년 불교방송(BBS)을 개국하며 그의 염원이었던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실현하고 있다.
그의 '사람 중심' 경영철학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이 동국 최고의 자본이다. 동국의 사람들은 지극히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것으로 모두 평등한 관계"라고 강조했던 그의 정신은 동국제강그룹의 선진 노사관계로 이어졌다. 1994년 국내 기업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후 현재까지 31년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업을 통해 민족과 국가에 보은하고자 했던 선각자"라며 "모든 사재를 사회와 불교에 환원한 큰 뜻을 계승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장경호 거사는 진정한 이 시대의 보살"이라며 "불교의 현대적 개선을 통해 모든 이가 마음의 평안을 얻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