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후변화 스튜어드십’ 유명무실… “개선 필요”
5일 국회서 관련 세미나 개최
국민연금이 지난 2023년 기후변화와 산업안전을 스튜어드십(수탁자 책임활동) 지침의 중점 관리 사안에 추가했지만, 2년여 동안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운용자산의 기후위험에 대한 공시가 이뤄지지 않고, 실질적 주주권 행사에 2~3년까지 소요되는 현행 구조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논의됐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박주민·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국민연금기후행동, 경제개혁연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주최한 ‘국민연금의 기후 스튜어드십,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국민연금의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과 책임투자 전략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실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은 지난해 12월 국민연금이 기후변화 관련 수탁자 책임활동으로 ‘석탄 관련 기업 투자배제전략’(2025년부터 해외자산, 2030년부터 국내자산 이행)을 의결·도입했지만, 관여 활동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대응 전략 및 계획, 운용자산의 기후위험 노출 정도, 운용자산의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집약도 및 감축 목표 등 최근 국제적으로 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에 요구되는 기후 관련 재무정보의 공시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현정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올해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탁자 책임활동으로 6건의 비공개 면담 외에는 중점관리 대상기업을 단 한 곳도 지정하지 않는 등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또 면담부터 공개·비공개 중점 관리, 서한 발송,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 각 단계 관리 대상 기업이 3개 안팎에 불과하고, 공개적인 주주활동에 이르기까지 최소 2~3년 걸리는 절차적 구조, 비공개 위주의 활동으로 인해 이해관계자에게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점에서 실행력과 속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의 진행으로 국민연금 및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탄소중립 목표 준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좌초자산 위험과 그에 따른 손실이 국민연금 기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후 스튜어드십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기업과의 신뢰 유지를 위해 비공개 대화로 체질 개선을 먼저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공적금융 기관 및 민간 금융회사들의 기후 스튜어드십 확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규모 중 위탁운용 자산 대부분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워싱’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위탁자산의 실질적인 책임투자 고려와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선정 기준에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 관련 평가지표들이 기후 리스크를 평가하기에 매우 불충분하고 기후 관련 정보 입수율도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선경 켐토피아 ESG 전략실 상무 역시 국민연금의 단순한 ESG 등급 반영을 넘어, 주주활동 강화와 위탁운용사 ESG 활동 평가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운용사가 형식적으로 코드만 만들어 놓고 있어 운용사의 성과 평가 기준으로서 실질적 의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용환 NH-아문디(Amundi)자산운용 ESG리서치 팀장은 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Say on Climate’ 주주활동을 소개했다. 기후 임팩트가 큰 국내 상장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수준을 파악하고 감축 노력을 촉구해 투자대상기업의 가치 향상 및 펀드의 위험조정수익률(Risk-Adjusted Return)을 제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는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만을 좇아 화석연료 투자를 이어간다면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사회환경적 피해들이 가입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미래세대를 포함한 연령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국민연금의 기후변화, 산업안전과 같은 ESG를 충분히 반영해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가 가능하다는 데 공감하고, 국민연금과 더불어 금융기관 전반이 기후변화와 같은 위험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주민 의원은 축사를 통해 “국내 굴지의 에너지·제조 기업의 최대주주로서,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지속가능한 금융 생태계의 실질적 변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화석연료 투자와 기후대응 정책, 스튜어드십 실천을 둘러싸고 시민의 요구와 글로벌 기준도 높아진 만큼,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장식 의원은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됐고, 기록적인 폭우와 이상고온, 농업 생산 차질, 잦은 산불은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위험으로 다가온다”라며,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연기금’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연기금’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