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시대, 전력 가격 '가격입찰제' 로 전면 바꿔야"

KDI "가격입찰제 도입·용량시장 활성화 필요" 재생에너지 비중 급속 확대 2038년 29.2%로 낡은 전력시장 구조로 투자 위축·계통 불안정 심화

2025-09-04     신경훈 편집인
재생에너지 확산과 발전을 위해 현행 전력도매시장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미지=픽사베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산이 전력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는 가운데, 경직적인 현행 전력도매시장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일 발표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전력도매시장 구조 개선 방향'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전력시장 운영 메커니즘이 재생에너지 시대의 변화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2038년 29%까지 확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01년 0.04%에 불과했던 것이 2023년 8.5%로 급증했고,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2038년에는 29.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급격히 변동하는 '간헐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전력 수급 안정성에 새로운 도전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출력이 급증하거나 급감할 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유연성 자원의 확보가 계통 안정성 유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행 가격 결정방식의 구조적 한계

KDI는 현재 전력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이 같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행 시스템하우스가격(SMP) 체계는 발전사들의 입찰가격이 아닌 한국전력거래소가 연료비 기반으로 산정한 변동비를 토대로 결정된다. 연료비가 발생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는 이 방식에 적용되기 어려워 시장 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매입되는 구조다.

윤여창 KDI 연구위원은 "이러한 구조는 재생에너지가 순간적으로 과잉 공급될 때 어느 발전기의 출력을 제한할지에 대한 명확한 시장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력 공급 부족 상황에 대비한 예비력 확보를 위한 '용량가격'과 주파수·전압 조정을 통해 실시간 수급 균형을 유지하는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사전에 정해진 기준으로 결정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시장기능 강화를 통한 투자 유인 확대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KDI는 전력시장 가격 체계의 전면적 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핵심적인 개선안은 발전사들이 판매 희망가격을 제시해 경쟁하는 '가격입찰제'의 도입이다. 현재의 비용 기반 가격 결정방식에서 벗어나 시장 경쟁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가격입찰제를 통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전력 자원이 시장 가격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 전력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출력 제어 등 시장 운영 기준도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량가격과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시장 기반으로 결정해 설비 투자와 기술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KDI의 제안이다. 다만 시장 중심 체계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지배력 남용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전력시장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매요금 연계 개편도 과제

보고서는 소매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라 도매시장에서 전력량 정산금은 감소하더라도 용량 및 보조서비스 정산금은 증가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조 변화가 소매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전력 판매업체와 발전사업자 모두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윤 연구위원은 "전력도매시장의 구조적 변화 상황에서 소매요금이 현재처럼 경직적으로 유지된다면 한국전력의 적자가 더욱 누적될 수 있다"며 "소매요금 역시 도매시장 가격 변화와 연계돼 탄력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종합적 시장개혁 통해 에너지전환 뒷받침해야

전문가들은 현행 전력시장 구조가 재생에너지 시대에 걸맞지 않는 낡은 시스템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특히 SMP 중심의 단일가격 구조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유류 등 화석연료 발전기의 단가가 전체 시장을 좌우하는 구조로, 연료비가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장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송배전망 병목현상과 실시간 수급 조절 능력 부족, 에너지저장장치 등 유연성 자원의 부족도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입찰제 도입과 함께 송배전 인프라 확충, 스마트그리드 구축, 민간 참여 확대 등을 통한 종합적인 전력시장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20세기형 전력시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모두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