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오일뱅크, 페놀 불법배출로 史上 최대 1761억 과징금
환경범죄 강화법 첫 적용···기업 리스크 확대 불가피 반복되는 HD현대오일뱅크 환경 문제··· "그린 워싱"논란
HD현대오일뱅크가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서 페놀 폐수를 불법적으로 배출한 사실이 적발돼 환경부로부터 지난달 28일 1761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환경범죄단속법 개정 이후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 제재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는 2021년 낙동강에 카드뮴을 불법 배출하여 28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영풍 석포제련소의 사례를 6배 이상 상회하는 금액으로, 환경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징벌적 의지가 강화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환경부 특별사법경찰관의 수사 결과 및 법원 판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페놀 농도 측정치를 조작해 허위 신고하고 방지 시설 설치를 피한 뒤, 2019년 10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페놀 배출허용기준(1.0mg/L)을 초과한 폐수를 배출했다. 이들은 페놀 농도 측정치를 허위로 신고하여 방지시설 설치를 면제받고, 기준치를 초과한 폐수를 자회사인 HD현대오씨아이와 HD현대케미칼로 보내는 우회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환경부는 HD현대오일뱅크는 충남도에 페놀 농도 허위 측정값을 신고해 폐수 방지시설 증설 의무를 회피, 방지 시설 설치를 면제 받았으며, 이후 폐수처리장 증설 비용 등 약 450억원 규모의 설비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2년 1월 25일 환경부에 이 같은 물환경보전법 위반 사실을 자진신고했지만, 환경부는 배출허용기준이 초과된 폐수를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배출한 사실을 파악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반면 회사 측은 가뭄 시기 공업용수 부족으로 재활용한 것일 뿐 외부로 오염물질을 방류한 사실은 없다고 맞서왔다.
이 과정에서 충남도와 환경부 특별사법경찰, 검찰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불법 행위가 확인됐다. 2023년에는 전·현직 임직원이 벌금 및 실형을 선고받으며 형사처벌까지 이어졌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까지 됐던 전·현직 임원들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 HD현대오일뱅크는 이들을 곧바로 동일 보직에 복귀시킨 것도 '도덕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고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는 법적 책임을 윤리적 책임으로 인식하기보다, 해결해야 할 법적 리스크로만 취급하는 기업의 안일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법 개정 거치면서 과징금 규모도 강화
이번 제재는 물환경보전법 제38조(배출허용기준 초과 위반)와 환경범죄단속법 제12조(과징금)에 따른 것이다. 1심 판결에서 위반 사실이 인정된 데 이어, 환경부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익 환수와 과징금 규모를 확정했다.
특히 2020년 11월 개정된 환경범죄단속법에 따라 페놀 배출도 과징금 대상에 포함됐고, 부과 기준이 '매출액의 5%'로 강화되면서 최종 1761억원이 산정됐다.
환경부는 HD현대오일뱅크의 최근 3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여러 요소들을 반영해 과징금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및 민간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과징금심의위원회의 법률적 자문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공업용수 재활용 과정에서 외부로의 오염물질 배출은 없었다”며 “아직 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항소심을 통해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 지역사회의 불안과 오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소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반복되는 HD현대오일뱅크 환경문제 ···"그린 워싱 기업"
HD현대오일뱅크의 환경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충남 서산 해상에서 벙커C유를 유출하여 광범위한 해안 오염과 어민들의 생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 2018년에는 대산공장에서 정제되지 않은 유증기가 유출돼 인근 주민과 직원들이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HD현대오일뱅크의 환경 및 안전 관련 인프라 투자가 미흡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축소에 급급했던 과거의 행태와 궤를 같이한다. 이번 페놀 폐수 불법 배출 사건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약 450억 원이라는 명확한 경제적 이득을 위한 '계획적 범죄'였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심각성의 차원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가 친환경 신사업에 투자하고 ESG 경영을 표방하면서도 , 내부적으로는 환경 범죄를 저지르는 이중적 행태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린워싱'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HD현대오일뱅크가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만드는 깨끗한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ESG 경영을 기업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환경범죄를 저지른 점은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보고서는 또 "환경에 미칠 영향을 저감함으로써 책임있는 환경경영을 실천하겠다"며 "사업장 전체의 환경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현실과의 괴리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업계 전반에 환경 규제 강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유해물질 배출 방지시설 설치와 폐수 처리 관리·감시가 대폭 강화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됐다.
HD현대오일뱅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만큼 이번 과징금 처분 역시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ESG와 지속가능경영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환경 오염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김은경 환경부 감사관은 "환경범죄로부터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며 "이번 과징금 처분이 기업이 환경법 준수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