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상승 1.5°C 억제 사실상 실패··· 2.0°C로 수정하자"
에너지 컨설팅 기업 라이스태드 에너지 지적 ... 올해 평균 온도 1.5°C 상승 돌파 예상··· "2.0°C 재설정이 현실적"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도 결렬··· "인류에 대한 배신"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기업 라이스태드 에너지(Rystad Energy)가 파리협정의 핵심 목표인 지구온도 1.5°C 상승 억제가 사실상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각국의 탄소감축 이행력 부족과 개발도상국 배출량 급증,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라이스태드 에너지는 이달 초 발표한 '지구온도 집중조명: 2.0°C는 새로운 1.5°C인가?' 보고서에서 올해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상승할 확률이 33%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5~2029년 중 적어도 1년은 1.5°C를 넘을 가능성이 86%, 5년 평균 온도가 이 기준을 초과할 확률도 70%로 제시했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5세대 대기 재분석 자료 ERA5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 연평균 지구 기온은 엘니뇨 현상으로 2년 연속 1.5°C를 넘어선 바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1.55±0.13°C까지 상승했다.
라이스태드는 엘니뇨 현상과 아시아 전역의 반복적 폭염 등을 반영한 장기 온도상승 추세를 분석한 결과, 2025년이면 지구 평균온도가 1.5°C 상승선에 확고히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기후모델 '과도한 낙관론' 지적
보고서는 과거 일부 기후 예측 모델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낙관론에 기반했다고 분석했다. 노르웨이 시세로 국제기후연구센터의 최근 연구를 인용해 "낙관적 기후모델들이 실제 위성 관측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아 예측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라이스태드가 현실 데이터를 반영해 재분석한 결과, 지구가 기존 예상보다 CO₂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0.1°C 온난화에 해당하는 탄소예산이 기존 IPCC 평균치 220기가톤이 아닌 190기가톤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에게 허용된 탄소배출 총량이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의미다.
2025년 기준 남은 탄소예산은 1300억톤 CO₂e 수준으로, 감축이 지체될 경우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2.0°C가 현실적 목표"…2030년부터 연 2% 감축 필수
라이스태드는 이제 현실적 목표를 2.0°C 온난화 억제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C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 이후 전 세계 허용 탄소배출량을 총 750기가톤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구체적 경로로는 2030년부터 매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2%씩 꾸준히 감축해 2080년까지 실질적 배출량 '제로'인 순 제로(Net Zero)를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유럽 등 OECD 국가와 중국·인도 등 BRICS 국가는 현재 약속한 2050~2070년 순 제로 목표를 반드시 지켜야 하며, 다른 신흥 경제국들도 이보다 10~20년 늦지 않게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배출 상위 3개국이 전체 52% 차지
지구온도 상승 억제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는 ▲국제 기후정책 합의 미흡 ▲주요국의 파리협정 이탈 ▲개발도상국 배출량 급증 ▲글로벌 협력 부족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국(30%), 미국(13~15%), 인도(7%) 등 상위 3개국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2~54%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2060년으로 제시하고, 인도는 구체적 탄소중립 계획조차 내놓지 않는 등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도 국제 협력의 리더십 약화와 기후 재정·기술이전 지원 축소로 이어져 글로벌 감축 노력에 큰 타격을 줬다는 평가다. 각국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온실가스 감축계획(INDCs)만으로는 3°C 상승이 예측될 정도로 집행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도 결렬
이런 가운데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속개회의(INC-5.2)마저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결렬됐다.
부산회의 이후 8개월 만에 재개된 이번 협상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관리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국가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현지시간 13일 공개된 '의장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과 화학물질 규제 내용이 빠진 채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지난해 11월에 협약 성안을 목표로 부산에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개최되었으나 플라스틱의 생산 규제 여부, 우려 화학물질의 규제 방안, 재원 마련 방식 등에서 국가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회의로 기대를 모았던 이번 제네바 회의 결과에 대해 영국은 "최저 수준의 합의"라며 평가절하했다. 콜롬비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고, 파나마는 "협상의 레드라인이 짓밟혔다"고 비판했다. 의장 초안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이란 등 산유국과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강력한 플라스틱 규제를 요구하는 '우호국연합'(HAC)은 "생산 억제와 독성 성분 단계적 폐지 약속이 부족하다"며 "단순한 폐기물 관리 협정으로 전락했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린피스는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선물이자 인류에 대한 배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