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사 매출 0.06% '쥐꼬리 환급'··· 한국판 IRA 실효성 논란
배터리 3사 환급··· 연 300억으로 글로벌 경쟁력 핵심 미흡 ‘국내 생산·사용’ 규제, 해외 비중 높은 배터리 산업 발목 현금 지원 미흡, 미국·중국에 밀려 국내 배터리 투자 침체 적자 기업 배제, 세제 혜택 공제 방식 ‘실효성’ 논란
이재명 대통령의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공약이 현실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 제도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생산비용의 15%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지만, 배터리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인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정책 설계로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배터리산업의 국내 투자 유인책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가 이 제도로 받을 수 있는 연간 환급액은 300억원에 불과해 총 매출 대비 0.06%에 그친다. 이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의 투자 유인책으로 작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오창과 울산에서 배터리를 생산하지만, 생산물량의 대부분이 수출돼 ‘국내 생산·국내 사용’ 조건을 만족하는 물량이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최대 환급액은 20억원에 불과하다.
SK온은 현대차와 기아에 배터리를 공급해 상대적으로 나은 300억원의 환급을 예상하지만, 지난 2021년 설립 이후 지속적인 적자 상황에서 법인세 공제 방식은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해외 생산 비중이 평균 92.4%에 달하는 상황에서 ‘국내 사용’ 조건은 정책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적자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한계··· 해외 사례는
현행 법인세 공제 방식은 흑자 기업에만 혜택을 제공한다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SK온처럼 지속해서 적자를 기록하는 기업은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정책의 형평성과 효과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IRA을 통해 배터리 1킬로와트시(kWh)당 최대 45달러(약 6만원)를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는 총 생산비의 30~40%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제도는 적자 기업에도 현금 환급을 제공해 기업의 투자 의욕을 실질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투자비의 30%를 직접 현금으로 환급하는 제도까지 운영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밸류체인별로 차등화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배터리 기업들에 매출의 10~15% 수준을 보조해주고 있다. CATL은 2023년에만 8억92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았으며, BYD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총 37억달러의 직접 보조금을 수령했다.
중국의 지원 체계는 생산량을 목표치로 설정하고 차등적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투자보조금, 연구개발비 175% 수준의 비용 공제, 토지·금융 지원 등이 포괄적으로 제공된다.
일괄법의 한계·산업별 특성 미반영
한국판 IRA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디스플레이, 바이오, 수소 등 모든 첨단산업을 한 번에 지원하는 ‘초대형 일괄법’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각 산업의 고유한 특성이나 지원의 시급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마다 특성과 시급성이 다른 만큼 개별 산업지원법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며 “현재의 기형적 구조가 세수 지출 부담으로 이어져 비현실적 조건들이 추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은 ‘국내 사용’ 조건을 추가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미국과 중국이 ‘국내 생산’만으로 지원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독특한 조건은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푼돈 받으려고 수조원을 들여 한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이 나오겠느냐”며 “결국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해외로 떠나라는 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구용역과 정책 재검토··· 내년 세제개편안에 반영
정부는 현재 ‘국내생산기반 확보를 위한 세제지원 방안 검토’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세제개편안에 관련 내용을 반영할 계획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전문가들과 검토하고 있으며, 검토가 끝나는 즉시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보조금 지급에 따른 세수결손과 특혜 논란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제 지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첨단산업 발전기금’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직접 보조금 지급에 대한 반대 여론을 우회하면서도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현재의 일괄법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개별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터리산업의 경우 수출 중심 구조를 고려한 지원 조건 완화와 적자 기업에 대한 현금 지원 방식 도입이 검토돼야 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주요국의 지원 정책과 비교할 때 한국의 현행 정책은 양적·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보다 과감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