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세계 첫 '고방열 D램' 양산…"모바일 발열 문제 해결"

‘High-K EMC’ 적용, 열전도도 3.5배·열 저항 47% 개선 AI 스마트폰 발열 문제도 해결 기대

2025-08-28     신종모
SK하이닉스가 스마트폰 발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불리는 '고방열 모바일 D램'의 본격 공급에 나선다./ 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미지= SK하이닉스, 픽사베이

SK하이닉스가 스마트폰 발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불리는 '고방열 모바일 D램'의 본격 공급에 나선다. 메모리반도체 업계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혁신적 소재기술로 해결하며, 글로벌 프리미엄 D램 시장에서 지위를 공고히 할 전망이다.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신소재 'High-K EMC(Epoxy Molding Compound)'를 적용한 고방열 모바일 D램의 고객사 공급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신제품은 기존 제품 대비 열전도도를 3.5배 향상시키고 열 저항을 47% 개선해 스마트폰 발열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AI 시대 필수 기술…'발열'이 최대 걸림돌

최근 고성능 스마트폰과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기술 확산으로 모바일 기기의 연산 처리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성능 향상과 비례해 발생하는 발열이다.

특히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들이 공간 효율성을 위해 채택한 'PoP(Package on Package)' 구조가 발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PoP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위에 D램을 적층하는 방식으로, AP에서 발생하는 열이 D램에 직접 전달돼 기기 전체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로 인해 스마트폰은 과열 방지를 위해 '스로틀링(Thermal Throttling)' 기능을 작동시켜 의도적으로 성능을 떨어뜨린다. 고사양 게임이나 고화질 영상 시청 시 갑자기 끊기거나 느려지는 현상이 바로 이 때문이다. 배터리 수명 단축과 안전성 문제도 발열이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I 기능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의 연산 능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발열 문제가 성능 향상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며 "SK하이닉스가 하드웨어 차원에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방열 모바일 D램./사진=SK하이닉스

소재 혁신으로 열 방출 효율 극대화

SK하이닉스의 핵심 기술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는 밀봉재인 EMC의 소재를 바꾼 것이다. 기존 EMC의 주재료였던 실리카(Silica)에 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나(Alumina)를 혼합해 'High-K EMC'라는 신소재를 개발했다.

'High-K'는 높은 열전도 계수(K)를 의미한다. 일부에서 트랜지스터 게이트 절연막에 사용되는 'High-K Metal Gate(HKMG)' 기술과 혼동하기도 하지만, SK하이닉스의 기술은 패키징 단계에서 사용되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다.

새로운 소재 적용 결과 D램 내부 열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특히 수직 방향 열 이동 경로의 저항이 47% 개선돼 PoP 구조의 구조적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다.

HBM 노하우 모바일로 확장…기술 리더십 강화

이번 기술 개발에는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축적한 첨단 패키징 기술력이 밑거름이 됐다. 회사는 HBM 개발 과정에서 실리콘 관통 전극(TSV), MR-MUF(Mass Reflow-Molded Underfill) 등 최첨단 소재 및 패키징 기술을 통해 열 효율을 극대화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에서 검증된 소재·후공정 기술 역량을 모바일 D램으로 확장한 사례"라며 "메모리 반도체 포트폴리오 전반에서 일관된 기술적 우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기술 개선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공정 미세화 경쟁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소재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D램 시장 독점 체제 구축

SK하이닉스의 고방열 D램 양산은 글로벌 모바일 D램 시장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모바일 D램 시장에서 기술적 차별화를 통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 삼성전자, 구글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발열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어, SK하이닉스로서는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다.

한국투자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발열 문제를 해결해주는 D램'이라는 새로운 시장 세그먼트를 창출했다"며 "프리미엄 모바일 D램 시장에서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하며 수익성을 크게 개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군의 비중이 계속 늘고 있고, 특히 AI 기능이 탑재된 고성능 모델일수록 발열 관리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SK하이닉스의 기술적 우위는 더욱 값어치가 높다.

"소재 기술이 반도체 경쟁력 좌우"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번 기술 개발이 향후 메모리 반도체 경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나노 단위 미세공정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소재 혁신을 통해 성능 개선을 이뤄낸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임원은 "앞으로는 단순히 공정을 미세화하는 것보다 소재, 패키징, 시스템 최적화 등 종합적 기술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SK하이닉스가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부터 고방열 모바일 D램의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며,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과의 공급 계약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차세대 모바일 기기의 필수 기술로 자리잡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