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틸렌 최대 25% 감축··· 정부 "연말까지 석유화학업 재편"
나프타분해시설 18~25% ↓, 금융·세제·R&D 패키지 지원 등 차등 제공 '무임승차' 땐 지원 배제…여수 이어 서산도 산업위기지역 지정 검토
정부가 장기 불황에 빠진 석유화학 산업을 살리기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연말까지 최대 37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계획을 내놓아야 하며, 정부는 자구노력에 따라 금융·세제·R&D 패키지 지원을 차등적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주요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재편 협약이 체결된다"며 "최대 370만t 규모의 설비(NCC) 감축을 목표로 연말까지 각 사별로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선 자구노력, 후 정부지원 원칙…기업 빠른 호응 주문
구 부총리는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명약관화하지만 국내 업계는 그동안 문제를 외면해 왔다"며 "글로벌 공급과잉이 예고됐음에도 국내 업계는 과거 호황에 취해 오히려 설비를 증설했고, 고부가 전환까지 실기하며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화학산업협회가 올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뢰한 컨설팅 결과, 현재 불황이 지속될 경우 3년 후 석유화학 기업의 절반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업계 내 자율적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선제적으로 사업장 정리에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기업들의 빠른 호응을 주문했다.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며 "연말이 아니라 당장 다음 달이라도 계획을 제출하겠다는 각오로 속도감 있게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앞으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수시로 개최해 사업재편 진행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역경제·고용 충격 완화를 위해 여수시에 이어 서산시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자구 노력 없는 기업 지원 배제…공정거래법 완화는 빠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회의에서 석유화학 업계 구조개편의 3대 방향을 제시했다. △과잉 설비 감축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및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이다.
정부 지원 3대 원칙도 함께 발표했다.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 대상 구조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이다.
이날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자율 협약식'에서 NCC를 보유한 10개 기업 관계자들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총 270만∼370만t 규모의 NCC 감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감축 규모는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1470만t)의 18~25%에 해당한다.
정부는 각 기업의 자구 노력 정도에 따라 지원을 차등화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사업 재편을 미뤄 다른 기업 감산의 이익만을 기대하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정부 지원을 배제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산업계가 한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노력한다면 정부도 그에 상응해 뒷받침할 것"이라면서도 "책임 있는 자구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들 설비 감축의 혜택만을 누리려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는 업계가 그동안 요구해온 공정거래법 한시적 완화가 빠졌다. 업계는 그동안 기업 간 협의가 담합으로 해석될 수 있어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