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멈춘 고리 4호기…새 정부 '에너지 실용주의' 시험대

원안위 심사 통과 땐 10년 연장 가동…에너지 믹스 가늠할 분수령 업계선 계속 운전 가능성 높게 봐…시민단체선 안전성 재검증 강조

2025-08-13     진경남 기자
고리원전 4호기가 운영허가 40년 만에 가동을 멈춘 가운데 계속 운전을 두고 새 정부의 에너지 믹스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 4호기가 운영허가 40년 만에 가동을 멈췄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4호기 계속운전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심사를 받고 있으며, 이번 결정은 새 정부 원전·에너지정책의 향방을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 4호기는 6일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전력 생산을 중단했다. 전날 새벽부터 시간당 3%씩 출력을 줄이며 단계적으로 정지 절차를 준비했다. 1985년 11월 첫 전력을 생산한 4호기는 발전용량 95만kW의 가압경수로형 설비로, 운영 기간 중 설비 개선 등을 통해 현재도 발전 성능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다.

고리 4호기는 2023년 11월 원안위에 계속 운전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를 신청했으며, 고리 2·3호기도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1호기는 해체 수순에 들어갔으나 2~4호기는 심사 결과에 따라 최대 10년간 추가 가동이 가능하다. 심사 기간을 고려하면 고리 2호기는 올해 하반기, 3·4호기는 내년 중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

◇ 새 정부 에너지믹스 첫 시금석 전망

안전성 검증 후 운영 연장 승인 여부는 이재명 정부 원전 정책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새 정부의 원전 정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발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안전 확보를 전제로 '계속 운전'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기조에 따라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수명 연장을 불허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확대·균형'을 내세운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미 지어진 원전은 계속 잘 쓰자"는 입장을 밝히며, 원전·재생에너지를 균형있게 활용하는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강조해 왔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2월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 계획이 담겼다. 2038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5.2%, 재생에너지를 32.9%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로 탈탄소를 강조하고 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11차 전기본에 따른 신규 원전 건설은 불가피하다"며 과거 탈원전 입장을 바꿨다.

◇안정·경제 병행한 전력 수요 대응…안전성 문제 지적도

원안위의 심사 결과는 단순히 고리 4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넘어, 향후 국내 원자력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가동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제11차 전기본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전력 수요는 올해 106GW에서 2038년 145.6GW로 37% 늘어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원전의 조기 폐쇄는 전력 공급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출신인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가격 안정화 등 산업 측면에서 중요성이 높은 (신규) 원전도 안전성을 바탕으로 착실히 추진하겠다"며 원전 생태계 유지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지적한다. 김영희 해바라기 대표변호사는 "고리·월성 16기 원전 설계 당시 고려되지 않은 활동성 단층 5곳이 발견됐는데도 전수조사 없이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며 "며 "수명연장 시 최신 기술기준을 활용한 안전성 평가가 법적 의무임에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어 독립적 감시단을 통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