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맹 파국··· 수익배분 실패로 갈라진 KAI·LIG넥스원
1.8조 전자전 사업서 갈라져… KAI·LIG넥스원 결별 선언 1조7775억원 사업 두고 수익 배분 갈등서 촉발된 ‘빅딜’ 쟁탈전 한화·대한항공 각각 합류해 민영화·기술패권 2차전 전문가 “동맹 해체, 방산 시장 독점 우려”
국내 방산업계의 대표적 동맹으로 여겨졌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LIG넥스원이 결별을 선언했다. 1조7775억원 규모의 항공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을 두고 정면 대결을 펼치며, 사실상 협력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갈등을 넘어 한국 방산업계 전체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양사 결별의 직접적 원인은 수익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다. 과거 LIG넥스원이 중견 방산사 규모일 때는 KAI 주도의 협력 구조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대형 사업을 연속 수주하며 외형이 커지고 교섭력이 강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방산 업계에 따르면 KAI가 제시한 전자전기 사업 수익 배분율에 대해 LIG넥스원이 더 높은 몫을 요구했지만 조율에 실패했다. 이에 KAI는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은 대한항공과 각각 손을 잡고 정면 대결에 나섰다. 앞서 3238억원 규모의 천리안 위성 5호 사업에서도 LIG넥스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KAI가 기술 부족과 이해충돌 논란을 제기한 바 있어 양사 갈등의 뿌리가 깊음을 보여준다.
전자전기는 적 통신을 교란하고 무력화하는 핵심 무기체계로 KF-21, FA-50 등 전투기와 연동될 경우 수출 경쟁력을 크게 좌우한다. 한국군 최초 국산 전자전기 체계를 구축하는 이번 사업의 승자는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 양사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민영화 인수전까지 확산된 전면전
갈등은 KAI 민영화 논의로 확산됐다. 강구영 전 KAI 사장 사퇴 후 정부가 KAI 민영화를 본격 검토하면서 한화그룹과 LIG넥스원이 모두 인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한화가 KAI를 인수하면 육·해·공을 아우르는 ‘방산 완전체’가 돼 시장 과점 우려가 커진다. 반면 LIG넥스원이 성공하면 방산 2강 구도가 형성돼 시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가 맞선다. LIG넥스원은 유럽 에어버스와 접촉하는 등 해외 협력사 지지를 구하며 인수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방산업계 독점·과점 우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정부는 민영화 심사 시 산업 발전과 안보 영향을 종합 검토할 계획이다. 기술집약적이면서 수요독점 특성을 지닌 방산업계 특성상 경쟁과 협력의 균형점 찾기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한 독자 행보”
경쟁 체제로 전환하면서 양사는 독자적 기술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AI는 AI 국방 합성데이터 솔루션 전문기업 젠젠에이아이에 60억원을 투자했고, LIG넥스원은 군용 사족보행로봇 업체 고스트로보틱스를 1877억원에 인수하는 등 미래 전장 기술 선점에 나섰다.
해외 시장에서도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LIG넥스원은 이미 중동 3개국에 천궁II를 수출해 K-방공망 수출 기반을 다졌고, KAI는 FA-50·T-50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신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전자전기 사업의 해외 판로를 두고도 양사 간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전문가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는 대형 방산 프로젝트와 민영화가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과도한 경쟁에 따른 자원 분산과 중복 투자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향후 민영화 인수전 결과와 대형 사업 수주 경쟁의 승자, 독자 기술력과 해외 진출 성과가 결합돼 차세대 메가 디펜스 기업의 판도를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만했다.
방산업계 ‘동맹 해체’ 후폭풍 우려
업계 안팎에서는 양사의 분리가 생태계 협력 저해, 공정성 논란, 경영 불안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동안 방산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양사가 결별함에 따라 산업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시너지 효과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5호’ 사업 입찰 과정에서 KAI 측이 LIG넥스원이 기술 개발 실적이 부족함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평가위원이 과거 관련 기술개발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등 이해충돌 가능성도 제기되며 산업 내 신뢰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KAI 내부의 경영 불안정 역시 문제로 지목된다. 낙하산 인사, 임원 대거 교체, 조직문화 훼손 등으로 인해 경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번 결별이 이러한 불안 요소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LIG넥스원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에 못 미치면서 주가와 투자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방산 수요는 높으나 변동성과 시장 불확실성도 동시에 커져 방산업계 전반의 실적 부진 우려와 투자심리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KAI 민영화와 관련해 한화그룹, LIG넥스원 등이 인수전에 나서면서 독점 우려와 인수 자금 조달 가능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방산업계 전반에 긴장감과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KAI와 LIG넥스원의 결별은 단순한 기업 간 갈등을 넘어 방산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협력 체계에 장기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정부와 업계가 함께 공정하고 안정적인 협력 구조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