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K2 대박에도 구조적 난제 해결 시급
261대 추가 공급··· 폴란드형 모델 최초 양산 1년 늦어진 계약··· 한국·폴란드 양국 정치·경제 변수 극복 숙제 기술 이전·자금 조달 난관 속 정치 로비 논란까지
현대로템이 지난 1일 폴란드와 9조원 규모의 K2 전차 2차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최대 단일 방산 수출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성공 이면에는 1년 넘는 지연, 부패 수사, 현지 노사갈등, 명태균 게이트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어 향후 사업 추진에 우려를 낳고 있다.
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K2 전차 2차 계약은 애초 2024년 4분기 예정이었나 거의 1년 가까이 미뤄줬다. 지연 원인으로는 폴란드 내부 사정과 한국의 12.3 비상계엄 사태, 기술이전 협상 난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폴란드 측이 현지 생산 조건에 대한 추가 협상을 요구하면서 현대로템 경영진이 직접 현지에서 재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계약 지연은 경쟁사들에 대응할 시간을 제공하는 부작용으로 작용했다.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 등 유럽 방산업체들은 이 기간을 활용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전략적 공세를 강화했다.
현지 생산 파트너와의 갈등··· 부패 수사와 로비 의혹
이 과정에서 K2PL 전차 현지 생산을 담당할 부마르-와벤디 공장 직원들이 지난 3월 26일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레오파드 2PL 업그레이드 사업이 끝나면 K2 전차 생산이 2028~2029년에야 시작돼 그 사이 대량 해고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폴란드 내 생산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다. 폴란드 정부가 K2 전차 현지 생산을 서부 포즈난으로 결정하자, 기존 전차 생산 경험을 보유한 글리비체 지역 부마르-와벤디 노조가 강력 반발했다.
현지 생산에 따른 러닝커브 부족도 품질 우려를 낳고 있다. 폴란드 생산 파트너인 PGZ의 기술 역량 부족으로 초기 생산 물량의 품질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업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K2PL은 기존 K2보다 복잡한 능동방호장치와 원격사격통제체계가 추가돼 현지 생산 난이도가 더욱 높아진 상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로템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다. 2019년 3358억원 규모의 바르샤바 트램 수주 과정에서 폴란드 중앙부패방지국(CBA)이 전면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CBA는 현대로템이 유럽 트램 수주 경험이 전무한데도 바르샤바 예산보다 600억원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점에 주목했다. 폴란드 정치권에서는 입찰 취소를 요구했고, 경쟁업체인 페사(Pesa)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는 명태균 게이트와 연관된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 수사 결과 현대로템이 1조7960억원 규모의 고속철 입찰 과정에서 명태균을 통해 정부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2022년 10월 현대로템 채 모 상무가 명태균에게 경쟁사의 입찰 자격 제한을 요청하는 문건을 전달했고, 입찰 성공 후에는 이용배 대표이사 명의의 난 화분까지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로템이 명태균 로비 이후 코레일 고위직 5명을 자문역으로 특별채용한 사실이 확인된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코레일 기술직군으로 평가 기준 마련 등 정부 사업 입찰과 관련성이 높은 직무에 종사했던 인물들이어서 전관 채용을 통한 유착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자금 조달과 수익성 우려··· 지속가능한 성장 한계
K2 전차 계약 과정에서도 폴란드 측의 미온적 태도가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차관은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가능한 최상의 계약을 맺고 싶다”고 밝혀 노골적인 가격 압박을 가했다.
자금 조달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폴란드가 20조원 이상의 자본 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이 법적 한도에 근접해 신용 공여가 어려웠다. 국회가 2월 수출입은행 자본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2차 계약의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다. 이번 계약에서 현지 생산 물량(K2PL)이 애초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직수출 비중은 늘었지만, K2PL의 단가가 예상보다 높아져 전체적인 수익 마진은 오히려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 증권가에서는 “현지 생산 물량의 러닝커브 부족과 기술이전 비용 증가로 2차 계약분 후반기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이 포함된 복잡한 프로젝트에서는 정치적·경제적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폴란드 방산 시장에서 현대로템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은 단순히 해당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3조4000억원 규모의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서도 국내 업체 간 과열 경쟁과 유럽 방산블록의 견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지 방산업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폴란드를 유럽 K2 전차 생산 허브로 만들고, 한국 전차가 폴란드 안보와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9조원 K2 전차 계약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부패 수사, 정치적 로비, 현지 갈등, 자금 조달 등의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단기적 성과에 머물 위험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