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5개 증권사 발행어음 인가 중단 검토... 대주주 등 '사법리스크'가 '발목'

5개 증권사, 수년 만에 열린 발행어음 시장 문 두드렸지만… 대주주·임직원 사법 리스크, 금융위 인가 심사 중단 변수로

2025-08-06     황혜빈 기자
금융당국이 일부 증권사에 대한 발행어음 신사업 인가 심사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픽사베이 이미지, 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수년 만에 재개된 발행어음 신사업 인가 심사를 앞두고 증권업계가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신청에 나선 증권사 상당수가 대주주나 임직원의 법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어, 금융당국이 일부 증권사에 대한 심사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전반에 퍼졌던 기대감은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달 23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발행어음 인가 심사 진행 상황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았다. 신청서를 낸 5개 증권사 중 일부에 대해 ‘심사 절차 중단’ 방안이 내부 검토 단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법령상 심사 중단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실제로 심사가 미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금융위는 여름 휴지기를 지나 9월 초 인가 심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명시된 인가심사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신청인 본인이나 대주주가 형사소송 피의자이거나, 금융위원회 또는 검찰·경찰 등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경우 그 절차가 종료되기 전까지 인가 심사를 보류할 수 있다. 이는 자본시장 질서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결격 기준’으로, 실무 관행상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조항이다. 해당 규정에 따라 심사가 중단될 경우, 인가 여부 판단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현재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증권사는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키움증권 등 5곳이다. 모두 자기자본 4조원 이상으로, 자본시장법상 단기금융업 인가를 신청할 자격을 갖췄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1년 이내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동산담보대출 등에 운용하는 고수익 사업이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 자금 조달이 가능해 업계에서는 ‘현금흐름 확대의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이번 인가 심사는 2017년 NH투자증권 이후 6년여 만에 재개된 것으로, 업계에서는 ‘두 번째 발행어음 허가’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그러나 신청사들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인가 가능성은 안갯속이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키움증권이다. 김건희 여사와 연루된 '집사 게이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김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스타트업에 키움증권이 약 10억 원을 투자한 사실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특검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금융위는 발행어음 인가 시 대주주의 도덕성과 법적 적격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며, 최근 5년 내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는지 여부도 주요 기준 중 하나다.

신한투자증권도 지난해 벌어진 1300억 원 규모의 파생상품 손실 사건으로 인해 인가 심사에서 불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당시 ETF(상장지수펀드)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하던 내부 트레이더가 이상 거래로 막대한 손실을 내면서 현재 관련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동시에 금융감독원 차원의 기관 제재도 진행 중인데, 이 사안에서 ‘일부 영업정지’ 이상 수준의 중징계가 결정되면 인가 요건에서 결격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 신주인수권부사채(BW)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로 일부 임직원이 수사를 받고 있다. 하나증권의 경우에는 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하나은행장 재직 당시 채용비리 의혹으로 법적 다툼을 겪고 있다. 직접적인 위법행위가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대주주의 형사사건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심사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법 리스크가 없는 곳은 삼성증권뿐이라는 관측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하지만 심사 주체인 금융위는 개별사 심사 상태나 심사 방향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인가 여부는 신청회사와 관련된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며 “최종 결정 전까지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만 인가 심사 중단이 곧 ‘불허’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거나 결격 사유가 해소될 경우 다시 심사를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사법 리스크로 일시 중단됐던 심사가 수개월 뒤 속개된 사례가 있다. 실제로 자본시장법상 “인가 신청의 철회 없이 행정절차법에 따라 보류 또는 중단한 심사는 필요 시 재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는 최근 ‘모험자본 활성화’를 내세우며 증권사의 직접금융 기능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단기금융업 인가도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와 금융질서에 대한 책임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당국 내부에서도 “모험자본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와 시장 신뢰 유지라는 책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발행어음 인가 심사는 특정 증권사의 사업 진출 여부를 넘어, ‘자본시장 건전성 vs. 규제 합리화’라는 이슈를 놓고 금융당국의 시각과 원칙이 드러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다음달로 예정된 심사 재개 시점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