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의 기회” K조선 ‘마스가' 프로젝트··· 노란봉투법 변수될까?
487조원 마스가 vs 노란봉투법··· 한국 조선업 ‘기회와 위기’ 1500억달러 투자와 기술 수출, 첫 ‘퍼스트 무버’ 신화 글로벌 주도권 확보 앞 손에 든 노란봉투, 산업현장 혼란 우려 커져
한미 관세협상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른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수십 년에 한 번 찾아올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중 1500억달러가 조선업 전용으로 배정되며, 침체된 미국 조선업 재건에 한국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추진되는 노란봉투법이 이 거대한 기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선업 생산공정의 70~80%를 차지하는 하청 구조 특성상 노란봉투법 통과 시 조선업계에 치명적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조선업 협력을 내세워 관세 인하를 달성했다고 자평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그 조선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다.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마스가 프로젝트는 '투트랙'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전략적 산업 재편의 신호탄이다. 한국에서는 미 해군 함정 건조 및 유지·보수·정비(MRO)에 특화된 조선소를 설립하고, 미국에서는 조선 3사가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신규 조선소를 세운 뒤 한국의 첨단 상선 건조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이다.
특히 한국 조선업계가 처음으로 기술 수출국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는 것이다. 과거 서구에서 기술을 도입해 따라잡던 ‘패스트 팔로워’에서 이제는 기술을 전수하는 ‘퍼스트 무버’로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화오션이 선두주자다. 지난해 말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약 1억달러에 인수한 것은 단순한 인수합병(M&A)가 아니라 한국형 조선업 모델의 글로벌 이식 실험이다.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인 건조능력을 오는 2035년까지 10척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지난달 30일 필리조선소를 직접 방문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조선해양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와 미 해군성의 최우선 순위”라는 발언은 사실상 한국 조선업에 대한 ‘국가급 인정서’나 다름없다.
HD현대의 전략은 더욱 정교하다.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의 협업을 통해 2028년까지 미 현지에서 중형급 컨테이너 운반선을 함께 만드는 것은 기술 현지화의 완성판이다.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의 협업 확대는 민수와 군수를 아우르는 ‘풀 스펙트럼’ 전략이다. 현재 1조원 규모의 함정 사업을 2030년까지 3배로 늘린다는 목표는 단순한 매출 확대가 아니라 조선 안보 동맹의 핵심축으로 자리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이달 초 구성한 민간 태스크포스는 ‘코리아 조선 연합’의 성격을 띤다. 과거 개별 기업 차원의 경쟁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전략적 협력체로 진화한 것이다. 1500억달러 조선 전용 펀드의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표면적 목표이고, 실제로는 ‘포스트 차이나’ 시대 글로벌 조선업 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서 미묘한 우려가 제기된다. 마스가 프로젝트의 실질적 성과는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 HD현대의 미국 현지 협업, 삼성중공업의 글로벌 공급망 등 순수 민간 기업들의 맨손 개척으로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사실상 ‘뒷북’을 쳤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태스크포스(TF) 구성, 지원법 발의 등을 통해 마치 정부 주도 프로젝트인 양 포장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업계에서는 "땀 흘려 일군 성과를 정부가 가져가려 한다"는 불만이 은근히 제기되고 있다.
232배 격차가 만든 ‘불가능한 파트너십’의 탄생
미국 해군정보국 평가에 따르면 중국 조선업의 연간 생산능력은 약 2325만t인 반면, 미국은 10만톤 이하로 무려 232배의 격차를 보인다. 전성기 400여 곳이던 미국 조선소는 현재 수주 잔고가 있는 곳이 21곳으로 급감했으며, 이 중 12곳은 단 1척의 수주잔고만 보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격차가 오히려 불가능한 파트너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유지하려면 중국 조선소에 의존할 수 없고, 자국 조선업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몰락했다. 결국 기술력과 생산력을 모두 갖춘 한국이 유일한 대안이 된 것이다.
델 토로 전 미 해군 장관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성능 군함을 세계 수준에서 수십 년이나 뒤처진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 조선업의 항복 선언이다. 이어 “한국의 조선소는 이지스함을 포함한 고품질 함정을 우리 비용의 수분의 일로 건조하고 있다”는 인정은 한국 조선업의 압도적 우위를 공식 확인한 것이다.
한국 조선업의 독점적 지위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에서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62%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중국(38%)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의 생산성은 미국의 5배, 비용은 절반 수준이다.
미 의회예산국이 발표한 해군 확장 계획은 한국에 ‘골든타임’을 제공한다. 함정 규모를 2024년 295척에서 2054년까지 390척으로 늘리기 위해 364척의 신규 군함이 필요하고, 총 1조750억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의 조선업 역량으로는 이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상당수가 동맹국에 발주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한 하청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에 기술 종속되는 역전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한미 동맹 70년 역사상 처음 나타나는 현상으로, 조선업이 안보 동맹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견제카드로 떠오른 한미 조선동맹
마스가 프로젝트는 중국 조선업 견제라는 전략적 의미도 갖는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글로벌 선박 수주 점유율은 51.8%로 전년 동기 70에서 크게 하락한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15%에서 25.1%로 상승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조선업의 시장 점유율이 20%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것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첨단 기술과 관리 경험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 조선업은 장기적 쇠퇴 상태에 빠져 있어 상당한 투자를 하더라도 미국 조선업 부활 목표 달성은 어렵다”며 우려를 표한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마스가 프로젝트가 중국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마스가 프로젝트를 미국이 요구하는 국방비 증액 문제와도 연계시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마스가 프로젝트 210조원 가운데 군함 건조, 수리비용은 국방비에도 산정이 되는 것”이라며 “조선에 대해서도 계산을 달리하면 (국방비에 포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 조선업에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 조선업에 미칠 파급효과는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 생산공정의 70~80%가 하청 인력에 의해 운영되는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만 2420곳, 삼성중공업도 1430곳, 한화오션은 협력사 비중이 70%를 초과한다.
노란봉투법의 표면적 취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처우 격차를 해소하고 하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업계에서도 원청과 하청 간 임금 격차는 상당한 수준이다. 같은 작업을 해도 원청 직원은 연봉 7000만원, 하청 직원은 4000만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격차 해소 자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 방식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원청기업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미치는 범위에서 사용자로 간주돼 단체교섭 의무를 져야 한다. 문제는 이 실질적 지배력의 범위가 모호해 수많은 법적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수십, 수백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개별 교섭을 요구하면 산업 현장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대체근로 금지 조항이다. 현재는 사내하청 근로자가 파업을 해도 원청기업이 대체인력을 사용할 수 있어 파업의 실질적 압박력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통과 시 원청기업도 사용자로 간주되어 하청 노동자 파업 시 대체인력 사용이 금지된다. 조선업처럼 하나의 공정 중단이 전체 생산라인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한국의 경영 환경과 투자 매력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번 법안이 현재 형태로 시행될 경우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도 “현재와 미래 세대의 고용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 정책의 모순, 일관성 회복이 관건
현 정부는 미국에는 조선업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세 인하를 요청하면서도, 국내에서는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노란봉투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정책적 모순으로,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오늘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1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협력 패키지”라며 “가장 큰 기여를 한 마스카 프로젝트”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 가장 큰 기여를 한 조선업을 옥죄는 법안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실질적 토대는 민간 기업들이 수년간 묵묵히 쌓아온 성과라는 점이다.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정부 지원 없이 자체 자금으로 이뤄졌다. HD현대의 미국 진출도 순수 민간 차원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조선 3사가 글로벌 LNG선 시장 62% 점유율을 달성한 것도 정부가 아닌 기업들의 기술 혁신과 투자 덕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성과 가로채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마스가 지원법’을 대표발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 정부의 노조 중시 정책기조는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로 민주노총 출신 김영훈 전 위원장이 지명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조선업은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면서 정작 한국 조선업은 발목을 잡겠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며 “마스가 프로젝트의 핵심 성과들은 모두 민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이뤄낸 것인데, 정부는 나중에 와서 마치 자신들이 주도한 것처럼 포장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은 우리가 하고 공은 정부가 가져가는 식”이라며 “실제로 일부 조선업체들은 이미 노란봉투법 통과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최근 하청노조와의 상호 고소·고발 취하를 합의하고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를 준비 중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의 중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며 “210조원 규모의 조선 전용 펀드, 1560조원 규모의 미 해군 확장 계획, 중국 견제 필요성 등 모든 조건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노란봉투법이라는 내재적 위험 요소가 이 모든 기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서 “487조원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결국 정부가 이 정책적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