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국회 환노위 입법 릴레이··· 기업들 "덜덜"
이 대통령 통렬한 산재 비판··· 기업 "대책 부심" 환노위 산재TF 출범·노동법 개정 드라이브
연이은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초강력 대응을 요구한 가운데, 여당이 산업재해 근절을 위한 전방위적 제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책 마련과 법안발의가 이어지면서 환노위에 시선이 쏠린다. 과거 국회 내에서 '비주류' 상임위원회로 평가됐던 환노위가 '최강' 위원회로 변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산재 TF 출범…"구조적 문제 해결" 강조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 출범을 공식화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제한 등 경제적 제재와 ESG 평가 연계 투자·대출 제한 방안까지 검토에 나섰다고 밝혔다. 반복 산재기업에는 '기업 회생 불가능 수준의 제재'를 적용하겠다는 강경 입장도 내놨다.
소년공 출신 인권변호사인 이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된 노동·환경 중심의 국정기조가 본격화되면서, 환노위가 이재명 정부 핵심 정책 추진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환노위가 국토교통위, 산자위, 기재위 등 소위 '알짜' 상임위의 위상을 넘어서고 있다.
민주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이 출범시킨 산업재해예방 TF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실태조사와 간담회를 거쳐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핵심 목표는 △산업재해 근절 △노동자 생명·안전 강화 △현장 체감형 제도 개선 등이다.
정진욱 TF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째지만 여전히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함께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 있는 실천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도 '일벌백계' 방침 아래 산재 발생 기업에 엄정한 사법처리와 현장 작업중지 명령을 즉각 적용하고 있다. 안호영 환노위원장과 민주당 산재예방 TF는 포스코이앤씨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공사현장을 직접 점검하며 반복적 안전사고에 대한 강력 대응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노란봉투법' 법사위 통과 '포괄임금제 금지' '작업중지권 확대' 등 입법 러시
환노위는 또한 지난 달 29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1일 법제사법위 통과까지 이끌어내며 노동친화적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의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제한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환노위 의원들의 노동 관련 법안 발의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천하람 의원 등은 지난 23일 포괄임금제를 원칙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사용자가 근로자대표 협의를 거쳐 고용노동부장관 인가와 근로자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정호 의원 등은 28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해 근로자의 위험성 평가 요청권과 작업중지권 주체에 근로자 위원 포함 방안을 제시했다. 조지연 의원 등도 21일 판단능력 제약 근로자 대상 임금체불 가중처벌 규정 신설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환경 분야에서도 낙동강 중금속 오염, 4대강 재자연화 관련 청문회와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환노위를 통해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포스코이앤씨, SPC 등 긴급 대책 마련
강화된 규제 압박에 산재 위험이 높은 기업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포스코이앤씨는 1일 그룹회장 직속 '그룹안전특별진단TF팀'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 노조, 임직원 등이 참여하는 전사 안전관리 진단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전 현장 작업을 즉시 무기한 중단하고, 전사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안전점검에서 이상이 있을 경우 작업 재개를 불허하며, 전 현장의 잠재위험요소를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회사는 공식 사과문을 통해 모든 근로자(협력업체 포함)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사즉생의 각오로 안전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포스코는 그룹 차원에서는 ‘안전관리 전문회사’ 신설과 산재가족 돌봄재단 설립이 포함된 안전관리 혁신 계획도 공개됐다.
SPC 등 일부 대형 제조기업도 중대재해 비판과 이 대통령의 현장 방문 이후 초과 야근 폐지, 안전관리 인력 증원, 공정 자동화 등의 대책을 신속히 내놨다. SPC는 8시간 초과 야근을 전면 폐지하고, 근무시간 단축과 인력 확충, 생산구조 재편 등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노후 설비 및 위험 설비는 철거하거나 자동화 설비로 교체 중이고, 현장별로 안전점검 후 작업방식 개선, CCTV 등 감시·관리 시스템 강화가 핵심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사망사고 많은 건설사들 '초긴장'
한편 근로자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사들은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1일 환노위 박홍배 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 1분기까지 근로자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건설업이다.
사망사고 1위는 대우건설로 3년간 12건이 발행했다. 현대건설과 한국전력공사가 각각 1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롯데건설과 디엘이앤씨에서는 각각 9명의 근로자가 희생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건설사들은 산업재해 대책을 정밀하게 세웠다"면서 "최근의 사태를 보며 대책을 정비하고 현장에 사고 예방을 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산업안전은 생존의 문제"라며 산업계 전반의 재해 예방 인식 개선과 ESG·안전경영 도입 확산을 촉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둘러싼 핵심 산업계 "비상"
오는 4일 본회의 처리를 앞둔 노란봉투법개정안을 두고 국내 핵심 산업 현장에서 비상등이 켜졌다.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 13개 핵심 산업의 업종별 단체들이 노란봉투법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각 산업 현장에서는 “살 길이 막막하다”, “산업현장이 불타고 있다” 등의 반응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중국산 전기차에 밀려 허덕이는 판에, 노조 눈치까지 봐가며 어떻게 경쟁하라는 거냐.”
울산 한 완성차 부품업체 대표의 하소연이다. 그는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마음대로 교섭하고 파업할 수 있게 되면, 납기 일정 맞추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업계의 반응은 더 거세다. 복잡한 협력업체 구조를 가진 조선업 특성상 노란봉투법 도입시 조선업이 최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남 거제 한 조선소 현장 소장은 ”지금 전 세계에서 주문이 밀려드는데, 하청업체들이 원청 상대로 단체교섭하고 쟁의행위까지 하면 납기를 어떻게 맞추느냐“며 ”중국 조선소에 다시 시장을 내주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포항 한 철강 협력업체 대표는 “중국 덤핑에 원자재비 상승까지 겹쳐 이미 벼랑 끝인데, 노조 문제까지 생기면 정말 답이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도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해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는 하루라도 공급이 중단되면 완성차 생산라인 전체가 멈춘다”면서 “협력업체들이 원청 상대로 교섭권을 갖게 되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환노위의 입법 릴레이에 대해 경영계는 과도한 규제가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환노위에서 경영계 제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노동계 요구만 반영해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과도한 규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모·진경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