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현대제철, 美 50% 관세 충격··· 돌파구는 무관세 쿼터·현지진출?
6조4000억 수출시장 잃을 위기··· 韓 철강업계 ‘퍼펙트 스톰’ 포스코·현대제철, 위기 속 공장 건설·해외 공동투자 속도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이 철강 수입 관세를 50%까지 인상하면서 연간 6조4000억원 규모의 핵심 수출시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5월 대미 철강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6.3% 급감하고, t당 수출 단가도 9.4% 하락하는 등 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양사는 단기적으론 무관세 쿼터제 복원에 사활을 걸고, 중장기적으론 현지 생산거점 구축과 사상 첫 해외 공동투자를 통한 돌파구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 철강 관세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 철강업계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연간 263만t의 무관세 쿼터 혜택을 누렸던 한국은 올해 3월부터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받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6월부터는 관세율이 50%로 두 배 인상되면서 ‘퍼펙트 스톰’이 몰아쳤다.
위기의 심각성은 수출 실적에 그대로 드러났다. 5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2700만달러(약 4520억원)로 전년 동기 3억9000만달러 대비 16.3% 급감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수출 가격의 급락이다. t당 수출 가격이 지난해 5월 1429달러에서 5월 1295달러로 9.4% 하락했다. 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관세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마진을 줄여가며 버티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4년 기준 한국 철강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3.06%로 1위다. 일본(11.45%), 중국(9.95%)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미국 철강 시장은 다른 국가 대비 가격이 20~30% 높아 수익성이 뛰어나다. 2024년 12월 기준 열연강판 가격은 세계 평균 t당 631달러 대비 북미 평균은 753달러였다. 양사는 연간 6조4000억원 규모의 미국 시장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8월 한미 무역협상 분수령··· 기존 혜택 수준 확보 관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단기 대응책은 무관세 쿼터제 복원이다. 트럼프 1기 시절 263만t 규모의 무관세 쿼터를 부여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달 1일 한미 무역협상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 생존의 열쇠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다. 두 지역 모두 미국과 철강 쿼터제 합의에 근접한 상황에서 한국도 기존 혜택 수준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영국과 EU가 50% 관세에서 벗어나는 합의를 이뤄낸다면, 한국도 같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안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한한 관세 예외 적용이다. 자동차 강판, 에너지용 파이프, 특수강 등 미국 내 수요가 꾸준하고 대체재가 마땅치 않은 전략 품목을 중심으로 관세 예외를 인정받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 달 한국의 미국 철강 수출량이 23만9217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7% 증가한 것은 고성능 강재에 대한 현지 의존도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외 관세율 단계적 인하 협상이다. 쿼터 일부를 양보하더라도 관세율을 15~25% 수준의 중간 관세로 낮추는 절충안이다. 하지만 업계 내부적으로는 실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현지진출과 사상 첫 공동투자··· 철강 넘어 이차전지까지
근본적 해결책은 현지 생산거점 구축이다. 현대제철은 이미 결단을 내렸다.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확정했다. 총 58억달러(약 8조5000억원)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관세 부담을 완전히 회피할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포스코가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제철소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이다. 앞서 포스코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4월 21일 ‘철강 및 이차전지 소재 분야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국내 1위와 2위 철강업체가 처음으로 해외 공동 투자에 나서는 역사적 결정이다.
이번 협력은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280억달러)로 인한 경쟁 격화에 공동 대응하는 의미도 크다. 일본제철이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면 관세 부담 없이 경쟁할 수 있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투자 회수를 위해 미국 정부에 강한 보호무역 조치를 요구할 경우 철강 가격 상승으로 현지 진출 한국 업체에도 수혜가 될 수 있다.
양사의 협력은 철강을 넘어 이차전지 소재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해외 염호 및 광산 투자를 통해 리튬 원재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2030년 연간 326만대 전기차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어 철강-이차전지 소재 공급망을 동시에 안정화하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친환경 철강기술 개발도 핵심이다. 현대제철은 미국기계기술자협회로부터 원자력소재 공급사 품질시스템 인증을 획득했고,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 기술은 미국의 환경규제 강화 추세에 부합하면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됐다”며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무역협상에서의 실질적 성과와 함께 현지 생산거점 구축을 통한 단계별 접근, 친환경 기술 개발을 통한 차별화가 어우러질 때 양사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