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의 ‘트럼프 커넥션’··· 한미 관세 협상 판도 바꾸나
8월 1일 관세협상 시한 앞두고 김 부회장 직접 나서 8년 쌓아온 트럼프 인맥, 3일 남은 협상에 총동원 조선업 협력 중심 ‘마스가 프로젝트’로 중국 견제·산업협력
다음 달 1일 한미 관세 협상 시한을 앞두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미국 워싱턴을 찾았다. 한미 관세협상 시한을 사흘 앞둔 막판 상황에서 수십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실질적 이행 주체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민간 핵심 당사자인 김 부회장의 직접 등판은 정치·경제 양면에서 협상 타결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는 업계의 분석이다.
29일 정치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5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뉴욕 자택에서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미국 측이 보인 “큰 관심”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실제 이행 주체인 한화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나선 것은 제안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실행력은 이미 검증됐다. 올해 초 1억달러(약 1391억원)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를 인수한 것은 단순한 투자 계획이 아닌 이미 실행된 현실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한화해운이 지난 22일 한화필리십야드에 350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발주한 것이다. 이는 미국 내 조선소에서 약 50년 만의 첫 사례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한화그룹이 단순한 제안이 아닌 미국이 당장 집행 가능한 프로젝트라는 데 역점을 두고 직접 설명·자료 요구를 소화하고 있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미국 측이 그동안 정부 제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던 것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다.
김 부회장의 개인적 외교력도 주목받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이크 왈츠 주유엔 미국대사(당시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2기 내각 핵심 인사들과 직접 만났다. 이런 개인적 네트워크는 정부 간 공식 채널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비공식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산이다.
중국 견제·안보협력, 단순 관세 넘은 전략적 딜
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율 조정을 넘어 지정학적 전략과 맞닿아 있다. 중국은 2024년 기준 세계 조선 수주 점유율 69.2%를 차지하며 압도적 위치에 있는 반면, 미국은 1% 미만에 그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해군이 234척의 함정으로 미국(219척)을 추월한 상황에서 미국이 2054년까지 1조750억달러 규모의 해군력 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선업 부흥 정책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중국 견제라는 지정학적 목표와 직결돼 있다. 현재 대만의 에버그린 해운은 자사 발주 선박 중 15% 이상을 중국 군용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고, 한국·일본·프랑스·그리스 등의 민간 기업들도 다수의 선박을 중국의 이중용도 조선소에 발주하고 있다.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은 미국에게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미국 조선업의 현실은 참담하다. 인건비·원자재·규제로 인해 건조 단가가 동북아 대비 2~3배 높고, 첨단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기술력과 생산성이 모두 뒤처져 있다. 지난 1995년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폐쇄 이후 상선 건조 부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의 직접 참여는 ‘동맹국과의 현실적 협력’을 구현하는 살아있는 사례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이 5500억달러 투자 약속으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데 성공했고, 유럽도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로 합의한 상황에서, 한국도 유사한 규모의 투자 약속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선업이라는 차별화된 협력 영역을 제시함으로써 단순한 투자 규모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
한화그룹은 단순한 시설 인수에 그치지 않고 추가 투자, 현지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연간 1.5척에 불과한 현재 건조 역량을 10척 규모로 늘릴 구체적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런 명확한 실행 계획은 미국 측 협상진에 ‘실현 가능한 제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국내 산업계의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조선업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정부가 추진하고 민간이 이행한다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민간이 아예 주체로 설 자리까지 만든 셈”이라며 “관세 논의가 산업 진출·기술 이전·해군력 협력까지 한꺼번에 다뤄지는 복합 협상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 요인도 존재한다. 미국 현지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한화오션이 생산과 조달을 현지화하면 국내 협력업체들의 가동률 저하와 고용 불안이 우려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이번 워싱턴행은 단순한 기업인의 출장을 넘어선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단순한 정부 간 약속이 아닌, 민간 기업의 구체적 실행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협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