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해운의 ‘친환경’ 역행··· 노후 LNG선 동남아 해변서 원시 해체
국내 해운사, 해외 저가 처리 의존도 심화 대부분 서남아시아 해변가서 해체, ‘그린 워싱’ 논란 가중 전문가 “노후선 폐기 과정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
국내 주요 해운사들이 친환경 선대 구축을 내세우며 올해 상반기에만 노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8척을 해체했다. 이들 선박 대다수가 방글라데시·인도 등 서남아시아 해변가에서 원시적 방식으로 해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글라데시와 인도는 전 세계 선박 해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해체국가다. 이 지역의 해체 현장에서는 석면, 중금속 등 유해 물질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채 해양과 토양에 방출되고 있다. 산업 재해와 환경오염 문제로 현지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고, 대부분의 해체 현장에는 폐기물 관리 시스템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국내 해운사들은 낮은 비용을 이유로 이러한 해체 방식을 지속해서 사용하고 있어 ‘그린 워싱(Green Washing)’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2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LNG해운,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등 주요 해운사들이 20여 년 이상 운항해 온 노후 LNG 운반선 해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강화된 국제 환경 규제와 연료 효율 저하가 주된 원인이다. 한때 LNG 수송을 이끌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건조 1세대 증기터빈 추진 LNG선을 중심으로 순차적 퇴역 및 해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LNG해운은 올해만 13만5000㎥급 스팀터빈 LNG 운반선 ‘현대 코스모피아호’(2000년 건조)를 포함해 최소 2~3척의 노후선을 해체 매각했다. 이번에 매물로 나온 ‘현대 코스모피아호’ 역시 해체 용도로 7월 초 매각이 완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국내 해운사가 해체 목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LNG 운반선은 7~8척에 이르며, 이 중 상당수가 현대LNG해운 보유 선박인 것으로 파악된다.
SK해운 역시 증기터빈 방식 LNG 운반선 시장 퇴출을 사실상 완료했다. SK해운은 2024년 말에서 2025년 초까지 ‘SK Summit’, ‘SK Supreme’, ‘SK Splendour’, ‘SK Stellar’ 등 1999~2000년 건조 선박 4척을 일괄 해체 매각했다. 지난 3월에는 마지막 남은 증기터빈식 LNG 운반선 ‘SK Sunrise’까지 퇴출시켰다. 이에 따라 SK해운은 증기터빈 방식의 구형 LNG선 5척을 전량 해체·매각하며, 노후선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었다.
에이치라인해운도 올해 상반기에 2000년 건조된 멤브레인형 LNG운반선 'HL Ras Laffan(라스 라판)호', 'HL Sur(수르)호' 등을 해체업체에 매각했다.
업계 관계자는 “IMO 등 국제 해양 환경 규제로 구형선박 시장 퇴출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운영비 절감 및 신규 화주 유치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2009년 이후 지속되는 인권·환경 문제
문제는 이들 선박의 최종 행선지다. 전 세계 선박해체 시장의 98%를 방글라데시(46%), 인도(33%), 파키스탄(19%) 등 서남아시아 국가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대부분 원시적인 ‘비칭(Beaching) 방식’으로 해체가 이뤄진다. 이는 선박을 해변에 좌초시켜 인력으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환경 오염과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비정부기구(NGO) 단체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남아시아 선박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면, 중금속, 유독 가스 등이 작업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주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LNG 운반선의 경우 극저온 저장을 위한 단열재와 특수 코팅재 등이 사용돼 해체 시 더 많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현재 국내 선사들이 매각하는 노후선들의 구체적인 유해물질 처리 방안이나 해체업체의 환경 기준 준수 여부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홍콩협약 발효에도 ‘근본적 한계’ 지적··· 해외 의존 심화
지난 6월 26일 발효된 선박재활용협약(홍콩협약)은 500총t 초과 선박에 유해물질 목록 탑재와 재활용 준비 완료 인증서 발급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 해체 작업장의 환경·안전 기준 강화나 모니터링 체계는 미흡한 상황이다.
발틱국제해운동맹(BIMCO)은 향후 10년간 약 7억재화중량톤수(DWT) 규모의 선박이 해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0년 대비 2~3배 증가한 수치로, 현재의 서남아시아 중심 해체 시스템이 지속될 경우 환경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국내 선박해체 현실도 녹록지 않다. 전국적으로 35년 이상 노후 선박 1644척이 방치되고 있으며, 500t급 선박 해체에만 6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많은 선사가 비용 절약을 위해 해외 저가 해체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철스크랩 수요 급증이 부른 ‘친환경 역설’
무엇보다 친환경 정책이 폐선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으로 철강사들이 전기로 기반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철스크랩(고철_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선박해체 가격이 2020년 LDT(선박 폐선을 위한 선가단위)당 300달러(41만4000원)에서 2023년 520~610달러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높은 해체 수익성은 선사들의 노후선 조기 퇴출을 부추기고 있지만, 정작 해체 과정에서의 환경 기준은 여전히 느슨한 상태다.
해운업계 전문가는 “친환경 선박 도입을 위한 노후선 대체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작 폐선 처리 과정에서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라며 “진정한 친환경 조선업을 위해서는 선박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환경 영향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환경 선박을 만들기 위해 노후선을 폐기하는데, 정작 그 폐기 과정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면서 “친환경을 표방하며 급성장하는 조선업계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신조선 기술 개발을 넘어 폐선 처리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