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빅2, 해외 진출로 미래 변동성 돌파한다
해외 진출·고부가 친환경 기술로 보호주의 대응 한화오션, 5년간 미 해군 MRO 독점 수혜… 조선업 변동성 돌파 HD현대중공업, 기술파트너십으로 美·필리핀 조선시장 공략
한국 조선업계가 국내 설비 포화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라는 이중 벽을 돌파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조선해양은 오는 2027년까지 이어질 국내 조선소 포화 상황을 오히려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역전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의 존스법과 각국의 세제 장벽을 진입 제약이 아닌 현지화 기회로 해석한 접근법이다. 이들은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설정하고, 직접 투자와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미국 시장 진입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2024년 7월 미 해군과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 체결 후 단 1개월 만에 4만t급 군수지원함 정기 정비 계약을 수주하며 한국 기업 최초로 미 해군 MRO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계약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수주액을 넘어선다. MSRA 체결로 향후 5년간 미 해군 MRO 입찰 자격을 확보함으로써 연간 100억달러 규모의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신조선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한 셈이다.
한화오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필라델피아 필리십야드 인수(1억달러)를 통해 상업선 건조까지 동시 공략에 나섰다. 연간 생산 능력을 기존 1척에서 8~10척으로 800% 확대하기 위한 7200만달러 추가 투자와 함께 한국의 로봇용접·블록 생산 기술 이전도 추진 중이다.
반면 HD현대조선해양은 미국 내에서 Edison Chouest Offshore(ECO)와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공동 건조 협력 및 헌팅턴잉걸스와의 첨단 조선 기술 양해각서(MOU)를 토대로 점진적, 협력적 시장 진입 전략을 펼치며 오는 2028년 첫 선박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 파트너십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시장 내 입지를 확장하는 신중한 접근법이 돋보인다.
이는 기술 파트너십을 통한 점진적 시장 침투 전략으로, 직접 투자보다는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접근법이다.
필리핀 ‘서빅 조선소’ K조선 기술로 부활
15년간 잠들어 있던 필리핀 서빅 조선소가 한국 자본과 기술로 화려한 부활을 꾀하고 있다. HHIP(HD현대KSOE 필리핀)는 현재 1000명 규모의 인력을 배치하고 11만5000재화중량톤수(DWT) LR2·제품탱커 7척을 동시 수주하는 파격적 성과를 거뒀다.
필리핀 진출의 핵심 경쟁력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다. 2022년 제정된 크레이트(CREATE)법은 조선·수리 업종에 대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전면 면제하는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2020년 투자우선계획으로 조선업을 국가 우선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수출과 내수 시장 동시 공략이 가능해졌다.
기술 경쟁력 확보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50명의 조선 전문가를 파견해 용접 로봇 도입과 설계 자동화 등 최신 공정을 이식하고 있으며, 2027년 완전 가동 체제 돌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필리핀 MRO 시장 안정적 ‘캐시카우’ 역할
한국 조선업계의 해외 진출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업계는 미국·필리핀 MRO 시장이 향후 5년간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신조선 시장의 극심한 수주 변동성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특히 보호무역주의를 정면 돌파한 전략적 혜안이 주목된다. 미국의 존스법과 버인즈-톨레프슨 수정법은 연안 상선의 미국 내 건조·등록·승선을 의무화하고 해군 함정 MRO 시에도 사실상 미국 조선소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런 장벽을 현지 기술 협력과 합작투자를 통해 '진입 기회'로 전환시킨 것이다.
한국 조선업계의 해외 진출은 미국·필리핀에서 멈추지 않고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 등으로 추가 거점을 확보해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수소·암모니아 추진선, 자율운항선 등 친환경·스마트 선박 기술을 이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기술 패권까지 장악한다는 구상이다.
미·영·유럽연합(EU) 해군 MRO 파트너십 확대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연계 진출도 추진 중이다. 2030년까지 완성될 이 글로벌 생산·서비스 네트워크는 한국이 세계 조선업 1위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정적 토대가 될 전망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한국 조선업은 단순한 생산 기지 이전이 아닌, 현지화와 파트너십을 통한 시장 진입 전략은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한국 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며 “다만 해외 진출에 따른 기술 유출 우려와 현지 운영 리스크, 그리고 급변하는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대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