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넷제로 시대 '모듈러 혁명'…건설업계 판도 바꾼다
공장서 80% 제작 후 조립만… 공사기간 30% 단축 재래식 시공보다 높은 공사비 부담··· "인센티브 줘 활성화 해야"
건설업계가 인력 고령화와 탄소중립이라는 이중고 앞에서 '탈현장시공(OSC·Off-Site Construction)'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특히 건설 공정의 80% 이상을 공장에서 처리하는 '모듈러 공법'이 공사기간 단축과 친환경 효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혁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장 안전에 대한 부담이 급증했다"며 "모듈러 방식은 기후 변화에 관계없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필요 인력도 대폭 줄일 수 있어 인구감소 시대에 최적화된 공법"이라고 강조했다.
◇ 공장서 미리 조립…제조업과 건설업의 경계 허물어
모듈러 공법은 구조체를 상자 형태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시공의 대부분이 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건설업의 제조업화'로도 불린다. 기존 공법에 비해 건설 폐기물과 탄소 배출이 줄고, 현장 작업이 적어 사고 위험이 낮다. 인건비와 자재비 절감 효과도 있어 공사기간을 20~30%가량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지 않아 재래식 공법보다 평균 30% 높은 공사비가 단점으로 꼽힌다. 또 표준화된 모듈 사용으로 맞춤형 설계에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모듈러 건설 시장이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시장 역시 올해 2500억원에서 2030년 2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일본과 폴란드 등도 모듈러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 재래식 부담 늘어나며 국내 기업도 모듈러 공법 재주목
국내 건설업계도 비용 절감 및 건설현장 안전 강화 등으로 모듈러 공법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탈현장 건설은 한국에선 1960년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공사 원가가 재래식 공법보다 30% 정도 비싸다 보니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재래식 공법의 원가 부담이 빠르게 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 사용 후 철거를 고려했을 때 모듈의 재활용성이 뛰어나 ESG 경영에 부합하는 공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현대제철, 포스코 같은 철강사, 삼성전자·LG전자 등 제조기업들도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탈현장 중심의 공장 생산 방식이 건설 외 업종에도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분석이다.
◇ 모듈러 건축 활성화… 공공발주 등 제도 개선 필수
정부도 내년부터 공공임대주택 연 3000호까지 모듈러 방식으로 공급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공공임대주택 건설 시 주택도시기금에서 10% 추가 융자를 지원하는 등 재정 지원도 나선다.
업계는 모듈러 건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공공발주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절대적인 발주량이 확보돼야 생산 단가를 낮추고, 민간시장 확대도 유도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관련 법규 개선도 요구되고 있다. 현재 국내 건축법은 기존 철근식 콘크리트공법을 중심으로 규제를 적용해 모듈러 공법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듈러 주택에 대한 용적률·높이 제한을 완화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