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아름다운 법안' 발효… 전기차·태양광 수출 대전환 불가피
IRA 근거 청정에너지·전기차 보조금 폐지…韓 기업 직격탄 AMPC 현행 유지되면서 배터리 및 일부 태양광 피해는 줄어 반도체 투자기업 세액공제는 확대 보조금 관련 불확실성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서명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 전략을 뒤흔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기반 청정에너지 세액공제가 대폭 축소되면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한화큐셀 등 미국 투자를 본격화해온 국내 기업들이 전면적인 전략 재검토에 나서야 할 상황을 맞았다.
반면 반도체 분야는 세액공제가 25%에서 35%로 확대돼, 삼성전자, TSMC 등 미국 내 생산시설을 운영 중인 기업들이 수혜를 볼 전망이다.
◇ 전기차 세액공제 조기 종료… 현대차, 미국 전략 수정 불가피
이번 법안의 가장 큰 변화는 전기차 세액공제의 조기 종료다. 기존 2032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던 북미산 전기차 세액공제(최대 7500달러)가 올해 9월 30일로 7년 앞당겨 폐지된다. 현대차그룹이 IRA 수혜를 전제로 조지아주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온 만큼,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요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SNS를 통해 "태양광, 배터리 산업을 해치는 중대한 전략적 실수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을 미래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며 IRA 축소를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도 이번 법안으로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IRA 수혜를 전제로 조지아주 등 미국 내 공장 설립과 증설에 나서왔지만, 세액공제가 사라지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다. 리스·렌터카 등 상업용 차량에 대한 세액공제 예외조항도 올해 9월까지만 적용돼, 사실상 전방위 규제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변수가 많은 트럼프 행정부 특성상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현지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며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 차종을 중심으로 보조금 일몰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배터리 세액공제는 유지… 중국 부품 제한 강화
한편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당초 우려와 달리 현행 유지된다. 조기 폐지 검토가 있었지만, 단계적 축소 후 2033년 폐지로 확정됐다.
다만, 중국 등 '금지된 외국 단체(prohibited foreign entities)'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 원재료·부품을 공급받는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제한을 강화하면서, 공급망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과 경쟁구도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AMPC 수혜조건이 현행대로 유지되고, 중국 견제가 강화된 것은 국내 배터리 기업에 긍정적인 면으로 볼 수 있다"며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전방수요 둔화가 우려되지만 전기차 전환의 방향성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중심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태양광·풍력 직격탄… 한화큐셀·OCI 계획 차질 불가피
태양광과 풍력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세액공제(ITC)와 생산세액공제(PTC)의 종료 시점을 당초 2032년에서 2027년 말로 앞당긴 데다, 2027년까지 전력 생산을 시작해야만 혜택이 유지되는 조건이 붙으면서 한층 까다로워졌다.
다만 법안 발효 1년 이내에 건설을 시작한 사업은 2027년 말까지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는 요건에서 제외했으며,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지으면서 중국산 기술이나 부품 등을 사용할 경우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항도 상원 최종 통과 과정에서 삭제됐다.
조지아주에 모듈 공장 투자를 검토 중인 한화큐셀, 텍사스 증설에 나선 OCI홀딩스 등도 투자 계획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는 "이 법안은 미국 내 청정에너지 산업의 성장을 멈추고, 향후 10년간 에너지 비용을 높이며, 중국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미국 현지에 진출한 태양광 제조기업에게 ITC 및 PTC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AMPC는 현행유지되기 때문에 예상보다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여기에 법안 확정으로 불확실성이 확실히 해소됐기 때문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쉬워졌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 반도체 세액공제 확대… 향후 관세 불확실성은 부담
반도체 분야는 세액공제가 25%에서 35%로 확대됐다. 2022년 말 이후에 가동하고 2026년 말 이전에 착공한 시설에 제공하는 이 세액공제로 삼성전자, TSMC 등 미국 내 생산시설을 운영 중인 기업들이 수혜를 볼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지급 타당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관세 정책에 맞게 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실제 세액공제와 보조금의 총액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