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KAI “정치의 벽 넘어··· 혁신의 DNA로 세계 선도”
포스코·KAI, 테헤란로서 ‘철강×항공우주’ 혁신동맹 수소·AI 기술로 2030년 미래산업 선점하지만··· 정권 교체마다 반복되는 ‘CEO 교체 잔혹사’ 혁신 연속성 위협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한국 미래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지고 있다. 포스코센터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서울사무소를 중심으로 전통 제조업과 첨단 항공우주산업이 만나 전례 없는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두 기업의 혁신 전략이 일치하며, 오는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 미래기술 개발에서 한국이 글로벌 선두주자로 나설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청사진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불과 2km 떨어진 두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운명을 마주해온다는 점이다. 바로 ‘정권 교체 = 최고경영자(CEO) 교체’라는 암묵적 공식이다.
수소 생태계 완성 프로젝트, 리더십 연속성 관건
4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가 2024년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되며 철강업계의 변곡점을 만들고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이 혁신기술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존 파이넥스(FINEX) 공정의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KAI는 19인승 수소연료전지 항공기 개발에 2025년까지 국비 55억원을 투입한다. 하이브리드 분산 전기추진 시스템을 적용한 친환경 커뮤터기 기술 확보가 목표다. 이는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완전한 수소 생태계 구축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10년 단위 초장기 프로젝트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포스코의 71년 역사 속 8명 회장이 모두 중도 사임했고, KAI 역시 25년간 8명 사장 중 내부 출신은 단 1명에 불과하다는 현실이다.
포스코 역사상 연임 임기를 완주한 회장은 최정우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유일하며, 그마저도 3연임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문제 제기로 CEO 후보군에서 제외되며 연임에 실패했다. 정준양 전 회장(2009~2014)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대통령 국빈만찬과 해외순방 수행단에서 연이어 배제되며 압박을 받았고, 권오준 전 회장(2014~2018)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4차례 해외순방에서 모두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철강재로 KAI가 수소 항공기를 제작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정작 이를 이끌 리더십의 지속성은 정치적 변수에 좌우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AI·디지털트윈 융합··· 정치적 독립성 확보가 과제
포스코ICT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융합한 ‘포스트프레임(PosFrame)’ 플랫폼으로 제철소 전체를 가상공간에 구현했다. 3D 시뮬레이션과 시각화 기술을 접목해 조업·설비·품질·안전·환경관리 영역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자율생산 운전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포스코DX는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기술센터를 신설하고 피지컬AI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인지·판단·제어 분야의 AI 엔진 개발을 통해 산업현장의 완전 자율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금속 코일 운반 크레인에 피지컬AI를 적용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KAI는 AI 파일럿 ‘카일럿(K-AILOT)’ 개발에 지난 2023년부터 1025억원을 투자하며 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유무인복합체계(MUM-T) 구현의 핵심 기술로서, 단순 조종을 넘어 실시간 전술 판단과 자율 임무 수행이 가능한 차세대 전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7년 FA-50에 AI 파일럿을 적용한 반자율 편대 비행 실증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KAI의 CEO 교체 양상은 더욱 직접적이다. 1999년 설립 이후 8명의 사장 중 내부 출신은 하성용 전 사장 단 1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정권 성향에 맞춘 '낙하산 인사'였다. 임인택(건설교통부 장관), 길형보(육군참모총장), 정해주(통상산업부 장관), 김홍경(산업자원부 차관보), 김조원(감사원 사무총장), 안현호(지식경제부 차관), 강구영(공군 참모차장) 등이 그 예다.
특히 강구영 KAI 사장은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으로 2022년 9월 취임했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인 6월 4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3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대기업 CEO들의 임기가 정권과 연동된다”며 “장기 계약을 꺼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7조원 투자 계획··· CEO 바뀌어도 흔들림 없는 혁신 DNA
포스코그룹은 2027년까지 약 2조7000억원을 미래기술 투자에 집중한다. 수소·이차전지소재 사업의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미래기술전략회의를 정례화해 전략 방향을 지속해서 점검하고 있다.
KAI는 2032년까지 연구개발(R&D)에 4조5000억원을 투자 AI/소프트웨어(SW) 미래 신기술을 내재화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우수한 인재 확보와 성과 기반 보상 시스템, 30~40대 고속승진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코는 초경량 티타늄과 마그네슘 합금 개발에 집중하며 항공우주 산업용 고성능 소재 공급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KAI는 탄소복합재 점프업 파트너십에 참여하며 효성첨단소재, 포스코퓨처엠 등과 함께 우주항공 분야 탄소복합재 기술개발 로드맵을 공동 수립했다.
KAI는 미래형 항공기체 미래형 항공기체(AAV) 개발을 통해 2031년 상용화를 거쳐 2050년까지 2만30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율비행과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으로 도심항공교통(UAM)과 지역간 항공교통(RAM)을 포괄하는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두 기업이 겪는 문제의 본질은 같다. 정치적 변수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과도한 영향이다. 포스코는 민영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KAI는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26.41%)인 사실상 준공기업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CEO가 바뀌어도 두 기업의 혁신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소, 디지털 트윈, AI,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첨단소재라는 5개 공통분모는 정권과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대한 산업계 자체의 생존 본능이 정치적 변수보다 강하다는 방증이다.
포스코는 최근 회장 3연임 정족수를 과반에서 3분의 2로 강화하며 정치권 개입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KAI 역시 방산업계에서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인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포스코와 KAI 모두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기업들”이라며 “정치적 편의주의를 배제한 전문성 기반 CEO 선임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