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압구정2구역 시공사 입찰 철수… 복잡한 속사정

현대건설과 리턴매치 무산… "글로벌 랜드마크 실현 한계" 조합원 대안설계 제한에 불리한 조건… 다른 구역 정조준

2025-06-24     진경남 기자
삼성물산이 압구정2구역 시공사 입찰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하면서 향후 강남권 정비사업에도 변화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삼성물산이 올 하반기 강남권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압구정2구역 시공사 입찰에서 발을 뺀다고 20일 밝혔다.

압구정 2구역은 강남구 한강변 최상급지인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 가운데서도 사업 추진이 가장 빠른 곳으로 공사비 예정 가격만 2조7488억원에 달한다. 업계 1·2위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올해 두번째 경쟁 구도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삼성물산은 표면적으로 입찰 조건을 검토한 결과 이례적인 대안설계 및 금융조건으로 수주를 철회한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리스크 관리 및 장기적인 시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번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대안설계·금융제안 제약… 승산 없다고 본 듯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대의원 회의를 통해 △대안설계 최소화 △이주비는 LTV 100% 이내로 제한 △모든 금리는 CD+가산금리 방식만 허용 △추가 금융기법 제안 금지 등 입찰 지침을 의결했다. 이를 통해 시공사 간 출혈 경쟁을 방지하고 재건축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 중에서 주목할 지침은 대안설계 제한이다. 대안설계는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가 조합이 제시한 기본설계와 다른 설계를 제안하는 것을 말한다. 대안설계는 건설사가 '랜드마크 단지'를 조성하는 전략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공사비 인상과 사업을 늦춘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 역시 2019년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때 과도한 대안설계를 제재하겠다는 기준을 밝히며 사업 진행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이번 지침이 사실상 승산을 낮춘 셈이다. 초고층 특화 설계, 맞춤형 금융조건 등을 통해 글로벌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의 결정을 존중하나, 현 입찰지침으로는 월드클래스 설계 및 디자인 등 당사가 구현하고자 하는 글로벌 랜드마크 조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 다른 구역 정조준… 장기전 유리 판단
압구정2구역은 현대건설이 일찌감치 우호적인 입지를 구축해온 곳이다. 여기에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기존 건축 배치나 층수, 가구 수 등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대안설계를 통한 ‘판 뒤집기’도 무산됐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향후 압구정 내 다른 구역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조합 주도 하의 정형화된 경쟁보다는, 자사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지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이후 무리한 조건의 정비사업 수주는 지양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조합이 경쟁사에 유리한 입찰 조건을 제시할 경우 수주 의사를 철회하는 사례도 종종 나온다. 신뢰도가 떨어져도 마케팅비 등 자금이 집행되기 전 빠르게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란 판단이다. 

올해 초 한남4구역 수주전에서는 현대건설과 정면 승부 끝에 승리했지만, 경쟁사의 수백억원대 매몰 비용 등 과열 양상이 부각된 바 있다. 이 같은 경험과 수주에 불리한 상황이 압구정2구역 입찰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내부에서는 한남4구역 사례를 교훈 삼아 과도한 출혈은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결정은 단기 승부보다 장기 구도에서 다른 유리한 구역을 시공권을 따내는 것이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