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톺아보기] 해양·해운산업 새 항로 여는 해양진흥공사
정책금융 너머 ESG·디지털·문화로... 산업 전환 속도에 맞춘 대응 나서
공기업은 개인이나 사기업이 하기 어려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맡아서 한다. 그래서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공기업이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국민의 삶에 이바지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공기업들이 눈에 띄지 않게 이 세상이 매끄럽고 안전하게 돌아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이 발생하면, 공기업들에게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다. 반면, 공기업들이 잘하는 일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국민 삶과 밀접한 공공기관들의 핵심 기능,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살펴보는 ‘공기업 톺아보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공기업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공기업들은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다.【편집자 주】
한국해양진흥공사(KOBC)는 국내 해운산업의 회복과 안정화를 위해 2018년 출범한 정책금융 공기업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업계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자, 정부는 공사를 설립해 국적선사의 경쟁력 회복과 해운물류 생태계 재편을 주도하도록 했다.
공사는 설립 이후 선박금융, 유동성 지원, 보증 제공 등을 통해 해운기업의 재무 안정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핵심 집행 기관으로서 국적선사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왔다. 정책금융을 통해 단기 수익보다 장기 산업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해운 구조 전환에도 힘쓰고 있다.
정책금융으로 국적선사 지원
KOBC는 해운금융 공급과 유동성 지원을 통해 한국 해운산업의 기반을 되살리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해운기업에 선박금융, 보증상품 등을 제공하며, 과거의 단기 수익성 위주의 구조를 장기적 정책금융 체계로 바꿔냈다.
또한, 2018년 수립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해운업의 과점화·운임변동 등 시장 리스크에 대응하는 역할도 맡았다. 특히 팬데믹 이후 해상운임 급등기에는 국적선사의 기민한 선복 확보를 지원하며, 수출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SG 금융의 전진기지로… 친환경 선박투자 확대
올해 들어 KOBC는 국내 공공기관 최초로 ‘블루본드(Blue Bond)’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국제 인증기관 DNV의 공식 인증을 받아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3억 달러 규모의 블루본드 공모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이는 해양·수자원 보호, 저탄소 선박 전환, 해상 인프라·해상풍력 설치 등 해양친환경 프로젝트 전체에 사용 가능한 ESG 채권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와 함께, ‘해운산업 위기대응펀드’ 내 ESG지원펀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녹색채권 발행·친환경 선박 도입을 위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으며, 작년 하반기에 이어 올해도 중소·중견 해운사들의 친환경 대응 자금조달을 위한 문턱을 낮추는 핵심 채널로 작동 중이다
이를 통해 국제해사기구(IMO) 탄소배출 규제 강화와 2050 탄소중립 의제에 발맞춰, 산업은행·해양수산부 등과 협력해 친환경·무탄소 추진선박(암모니아·메탄올·LNG) 및 관련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해운 ESG 전환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융 넘어 문화로… KOBC의 공공성 확장
KOBC는 공공문화사업과 지역사회 연계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일까지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해양미술페스티벌’이다. 지역 작가 60명이 참여해 회화 60여 점을 전시했고, 행사 기간 동안 3만 명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또한 국제해양영화제 공동 개최, 어린이 대상 해양문화 교육 및 장학사업 확대 등도 병행하고 있다.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및 해양문화 격차 해소 프로그램은 ‘해운 중심 공기업’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넘어, 해양문화 플랫폼 공기업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문화 기획은 지역 균형발전 전략과도 공통된 목표를 지닌다. 해운 산업 중심의 성장 구조에 문화적 접점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산업 중심 역할을 넘어 사회적 가치까지 아우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디지털, 친환경 등… 풀어야 할 숙제들
공사는 올해부터 ‘AI 전환(AX) 전략’을 도입해 해운·물류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숙도 진단, 오픈랩 구축, 챗봇 기반 시황 분석 등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실증 사례 확보나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국내 해운기업의 AI 전환율은 14%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공공부문 디지털 지원도 초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친환경 선박금융 확대 역시 과제로 꼽힌다. 공사는 중소 해운사를 위한 ESG 지원펀드를 운용하고 있지만, 친환경 선박 건조 비용이 기존 선박 대비 20~30% 높고, IMO의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따라 탄소세·배출부담금 등의 비용이 추가되면서, 친환경 설비를 갖춘 선박 확보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 여전히 산업계에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이제 ‘해운 재건’을 넘어, 지속가능한 해양산업 기반 조성과 친환경 전환, 해양문화 확산까지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정책금융 기능을 중심에 두되, ESG 투자 확대와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반의 변화를 지원하고 있으며, AI 기반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선박금융 같은 새로운 과제에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해운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공사의 향후 행보는 국내 해양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