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그룹, 시총 5위 도약··· 정기선 ‘선제적 미래 대응' 전략 통했다

시총 100조원 돌파, 재계 서열 9위→5위로 전통제조업에 디지털과 친환경 접목··· 중국과 초격차

2025-05-29     신종모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전통 제조업의 경계를 허물고 디지털 기술과 친환경 솔루션을 융합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인공지능생성이미지, 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HD현대그룹이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재계 5위로 급상승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붐이라는 외부 환경을 기회로 전환시킨 결과지만, 본질적으로는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의 체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경영 전략의 결실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전통 제조업의 경계를 허물고 디지털 기술과 친환경 솔루션을 융합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안목, 서로 다른 사업 영역 간의 시너지 창출,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기술 생태계 구축, 지속가능한 경영 정착이라는 네 가지 핵심 요소가 현재의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친환경 선박과 차세대 추진 시스템, 디지털 혁신 기술에서 중국 조선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전략적 선견지명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

정 수석부회장의 리더십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업계의 구조적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전략적 안목이다. HD현대일렉트릭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어려운 시기에도 800억원을 투자해 500킬로볼트(KV) 변압기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구축했다.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던 ‘위기 속 투자’ 전략이 2020년대 들어 탄소중립이 글로벌 화두로 떠오르고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면서 빛을 발했다. 실제로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41%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그가 추구하는 경영 철학의 핵심은 단순한 현재 수익성보다는 미래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측하고, 필요한 역량을 미리 구축하는 '선투자 후수확' 전략이다. 2022년 HD현대가 그룹 창립 50주년을 기점으로 전통 산업구조에서 탈피해 수소·에너지·AI·로봇 등으로 신사업 대전환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HD현대중공업이 중국보다 7년이나 빠르게 액화천연가스(LNG)선박 양산에 성공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술 투자와 혁신 의지의 결과다. 기술 선도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조선, 전력기기, 건설기계라는 서로 다른 사업 영역 간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통합적 접근법이다. 기존의 단순한 사업부 확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이다.

HD현대는 해양에서의 ‘오션 트랜스포메이션’과 육상에서의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양대 비전을 통해 해상과 육상을 아우르는 종합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전체 밸류체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조선업에서 확보한 LNG 운반선 기술이 수소 운반선 개발로 확장되고 있다. 다시 육상의 수소 생산과 저장 기술과 연결돼 완전한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건설기계에서 개발한 무인화·자동화 기술은 조선소의 스마트화에도 적용되어 생산성 향상을 이끌고 있다.

통합적 접근은 HD현대일렉트릭이 단순한 전력기기 제조업체를 넘어 AI 데이터센터부터 신재생에너지까지 전력 인프라 전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 플레이어로 포지셔닝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직 혁신·핵심 인재로 미래 성장 토대··· 기술 생태계 구축도

정 수석부회장의 리더십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는 조직 혁신과 핵심 인재 확보다. 부회장 승진과 동시에 자신의 최측근인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장과 김완수 HD현대 경영기획실장을 각각 핵심 계열사 대표로 임명했다. 단순한 인사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김 대표는 정 수석부회장이 보스턴컨설팅그룹 재직 시절부터 직접 영입한 인물로, HD한국조선해양을 순수지주사에서 친환경 선박 핵심부품 제조와 기술 라이선스 사업을 자체 사업으로 하는 사업지주사로 전환하는 전략을 함께 수립해 왔다.

김 HD현대로보틱스 대표는 삼성물산에서 경영지원과 영업, 신사업 발굴 등 다방면의 경험을 쌓은 인물로, 정 수석부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로봇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현재 국내 로봇기업 중 매출이 가장 큰 HD현대로보틱스를 통해 산업용 로봇에서 협동로봇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전략에서 또 다른 혁신적 요소는 글로벌 기술 기업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기술 생태계 구축이다. HD현대가 팀네이버와 ‘클라우드 전환 및 AI 사업화 협력’ MOU를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CES 2024’에서 구글 클라우드와의 협업 로드맵을 공개하고, 그라비스 로보틱스,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자원부 등과의 협력 계획을 발표한 것은 HD현대가 글로벌 기술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파트너십은 HD현대의 제조 역량과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우드사이드에너지, 현대글로비스, MOL 등과 함께 추진하는 액화수소 운송 밸류체인 구축 프로젝트는 오는 2030년까지 대형 액화수소운반선 개발을 목표로 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이 올해 1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급 실적을 올렸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미래 성장 동력과 장기 전망, 친환경 기술 리더십 경영

정 수석부회장의 리더십 아래 HD현대가 구축한 성장 기반은 단기적 실적 개선을 넘어 장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액이 3조5702억원에 달하며, 증권가에서는 오는 2027년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었던 2010년의 5조8774억원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성장이 전통적인 사이클 호황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HD현대는 건설기계 부문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15% 성장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현재 11위에서 5위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무인화 4단계 수준의 완전 자율 건설기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기기 부문에서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AI 인프라 5000억달러(690조2000억원) 투자 발표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수주 목표를 38억2200만달러로 설정했으며, 미국 앨라배마 제2공장 건립에 1850억원을 투자해 현지 생산능력을 확장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하는 친환경 선박, 수소 에너지, 무인화 건설기계 등은 모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직결되는 사업 영역들이다. 단순히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선점하는 전략이다.

HD현대가 세계 최초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세계 최대 규모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등을 연이어 수주한 것은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기술 우위는 향후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이 강화될수록 더욱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HD현대그룹의 시가총액 5위 달성은 정 수석부회장의 혁신적이고 통합적인 리더십의 결과물”이라며 “정 수석부회장이 구축한 미래 지향적 사업 포트폴리오와 조직 역량은 HD현대가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글로벌 기술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