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부산 이전’ 공약에, 지역경제 vs 기업자율성 갈등 점화
직원 동의 없다던 노조 반발에도 “약속 지킬 것” 재확인 민영화 추진 기업에 정치개입 논란··· 경영효율성 우려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HMM 본사 부산 이전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HMM을 부산으로 옮겨오겠다”며 “이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지켜질 것”이라는 공약 이행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 공약은 부산항을 북극항로 시대의 아시아 핵심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내세웠으나, 기업 경영권 개입 논란과 지역경제 효과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맞서고 있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과 기업경영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정부 소유 기업의 민영화 정책과도 상충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28일 정치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앞서 이 후보는 지난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대한민국 최대 해운사인 HMM을 부산으로 옮기겠다”며 “민간 회사라 쉽진 않지만,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어 마음먹으면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이어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 육성의 일환으로 HMM 본사 이전이 부산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해당 기업 직원들의 동의도 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HMM 양대 노조는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본사 이전에 대한 논의나 동의는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정성철 HMM 육상노조 위원장은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해외 고객사를 만나는 건 서울이 더 효율적이고,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면 핵심 인력이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HMM 내부에서는 노조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체 직원 1800여 명 중 900여 명의 서울 사무직 중심인 육상노조(민주노총)는 부산 이전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반면 600여 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해원연합노조(한국노총)는 민주당 선거대책위 산하 북극항로개척추진위원회에 동참하기로 했다. 근무지가 배 위여서 본사 위치 변경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선원들과 달리, 본사 근무 육상직원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이 후보가 “직원 동의를 받았다”고 한 것은 주로 해상노조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실제 이전 대상인 육상직원들의 반대가 더 큰 상황에서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는 지난 18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직원 동의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부산 이전을 유도하겠다는 의미였다”며 해명했다. 일부에서 민주당이 공약을 철회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민주당 중앙선대위는 “해운기업 본사 부산 이전 공약은 철회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업계, 본사 이전 시 경영 효율성 부정적 우려
업계에서는 본사 이전이 경영 효율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HMM 본사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략기획, 영업, 재무, 마케팅, 법무 등 핵심 부서 8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대부분의 고객사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금융기관과의 협업도 빈번한 만큼, 본사 이전은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사례를 봐도 세계 1위 MSC는 내륙국가인 스위스 제네바에, 머스크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일본 ONE은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해운업이 글로벌 영업 중심인 산업 특성상 고객과의 접점이 많은 지역이 본사 입지로 적합하다는 업계 견해를 뒷받침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 회장(물류학박사)은 “본사 이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비즈니스의 이전”이라며 “현실적으로 해운물류 산업의 중심은 부산이 아닌 서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운업계, 포워딩업계, 물류업계, 그리고 수출입 화주들이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배는 부산항에 정박하지만, 비즈니스는 서울에서 이뤄지는데 고객을 두고 부산에서 혼자 일하는 것은 고객 무시”라고 덧붙였다.
부산 이전으로 인한 지역경제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MM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기준 지방소득세는 약 78억원으로, 부산시 예산 15조 6998억원의 0.05% 수준에 불과하다. 고용 창출 효과도 제한적이다. 본사 근무 인원 800명이 부산으로 이전해도, 이미 부산에는 지사와 자회사를 합쳐 약 2000명이 거주하고 있어 추가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운업은 제조업과 달리 대규모 고용이나 세수 증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영업 중심 산업 특성상 고객과의 접점이 많은 지역이 본사 입지로 적합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논란은 HMM 민영화 추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HMM은 명목상 민간 상장사이지만 산업은행(36.02%)과 해양진흥공사(35.67%)가 7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정부 주도 기업이다. 지난해 하림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매각을 시도했으나 정부의 경영권 개입 우려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정치적 개입이 반복되면 HMM은 민영화도, 공기업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인수 주체에게 명확한 경영 자율성 보장 신호를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