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순신 장군의 위기극복 전략과 한국해운 리더 HMM의 역할

2025-05-27     신종모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물류학박사)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에 필요한 양곡과 각종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수운(水運: 바다나 강 또는 내수로를 이용한 운송)에 대한 논의가 많았으며, 당시 수운을 관장하는 부서인 공조판서가 수운 이용에 대하여 임금에게 간언하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임금이 있는 곳이면서 핵심 관료와 사대부 및 양반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그곳에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지방에서 생산된 양곡이나 인삼, 도자기 등 특산물을 수운으로 운송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압제하에서는 군산항이나 목포항이 우리나라의 품질 좋은 쌀을 일본이 수탈해가는 선적항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이전 고려 때에도 해상운송을 통해 중국 등과 교역한 것 역시 선박의 제조와 해상운송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 역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불과 12척의 배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수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침략해오는 왜적선 133척을 괴멸시킨 일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바다와 배, 그리고 물길의 이용에 탁월한 재주와 전략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왜적선이 아무리 수백 척의 배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이 만든 판옥선과 거북선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거북선의 구조와 성능을 보면 단순히 외형적으로 철갑선의 위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하고 만든 과학기술의 결정체이자 해상 전투 전략의 승리작이었다. 그러한 조선의 위대한 조선기술이 오늘날 K-조선의 역사와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의 소수 정예 수군과 보유 선박 수를 고려해 볼 때, 지금도 선박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해운사업의 최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컨테이너 해상운송만 하더라도 세계 1위 해운선사인 스위스 MSC, 덴마크 MAERSK, 프랑스 CMA-CGM, 중국 COSCO, 독일 HAPAG-LLOYD 등 글로벌 선사들이 최근 수년간 컨테이너 선대 확대 경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해운사들은 우리 국적선사인 HMM에 비해 선대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단순한 선대 경쟁 전략은 자칫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컨테이너 선대 확장 전략은 해운 시황 호황기가 지속될 때에만 타당한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만약 해운 시황이 침체기로 접어들거나 불황기가 지속될 때는 오히려 고정자산인 선박의 과잉 공급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최근에도 해운사들은 수에즈 운하의 홍해 후티 반군 사태로 인해 희망봉 우회 경로로 해상운송을 하면서도 선박의 추가 투입을 주저하거나 임시결항(Blank Sailing) 또는 저속운항 등 다양한 대응조치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면서 운임 하락을 억제하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해운산업 역시 장치산업의 일종으로 쉽사리 선박을 처분하거나 조직과 인원을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리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해운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선박의 척수, 선대규모, 인원, 거점 등 기업의 자원은 최적화된 수준으로 유지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최근 세계 1위 해운기업으로 올라선 MSC보다 의도적으로 선대 확장에 신중을 기하는 덴마크 MAERSK는 과거 오랜 세월 세계 1위 해운선사 지위를 유지해왔으며, 1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1만8000TEU급 초대형컨테이너선을 한국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 발주하여 '규모의 경제' 효과를 최대한 누리는 동시에 시장을 선도했다. 이는 파멸적 경쟁을 통해 당시 상대적으로 자선(自船)이 적고 용선(傭船)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선대가 취약했던 한진해운의 파산을 초래하게 만든 기업이기도 하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무역전쟁의 충격에 따른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올해 성장 전망을 낮추면서 국내 국책 연구기관마저 우리나라 성장률을 0%대로 낮춰, 연초 2% 정도 수준이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하향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 이후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진흥 정책을 펼쳐 경제를 성장시켜가는 구조로 전환된 탓에 지금까지도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우리 상품의 99.7%를 선박을 통한 해상운송으로 전 세계 국가에 수출하기 때문에 특히 해운산업은 에너지, 제조산업, 유통산업, 조선산업 등 연관산업과의 파급효과가 큰 산업으로서 경기변동에 따른 시황변동이 매우 심한 산업이다.

우리 해운산업은 1970년대부터 수출상품의 해상운송은 물론이고 석유, 가스, 철광석, 석탄, 곡물 등 주요 원자재의 수입 운송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과거 한국의 해운산업이 취약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상품이나 원자재 수송을 우리나라 국적 선박으로 운송하는 비중보다 외국적 선사의 선박에 의해 운송하는 비중이 훨씬 더 컸다. 따라서 외국 선박에 의한 물자 운송으로 인하여 가뜩이나 부족한 외화가 유출되고 국내 해운선사들의 성장이 어려울 정도로 해상운송에서 외국적 선사보다 경쟁력이 매우 취약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국적선불취항증명서'라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이는 우리가 수출입하는 상품이나 원자재를 국적선이 아닌 외국적 선박으로 해상운송할 때 해상운송 경로와 서비스에서 우리 국적 선박이 취항하지 않는 경우에만 '국적선불취항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한 후 외국적 선박으로 해상운송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이 제도가 어느 정도 유치한 수준의 국내 해운산업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국내 해운업계는 정부의 국적선 우선 이용 정책을 활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수출상품을 운송할 해운기업의 신설과 확장에 힘을 기울였으며, 70년대~90년대에 이르러 급속한 한국 경제의 성장세에 힘입어 해운산업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적인 해운선사로 성장한 기업이 바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었다.

그러나 한국 해운산업은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건설, 금융, 제조, 조선, 해운, 물류 등 전 산업에 걸쳐 대량 실직사태와 산업 및 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쓰라린 역경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불과 3여 년 만에 외환위기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후 해운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정부에서는 부채비율의 상한 통제를 통하여 당시 부채비율이 높은 해운선사들이 선박을 매각하도록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당수의 기업이 불황기에 싼 가격에 선박을 매각했는데, 나중에 해운 경기가 회복기와 성장기에 도래했을 때 정작 상품을 실어나를 배가 부족하다 보니 다시 매각했던 선박들을 고가로 재매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최근 K-해운이 다른 경쟁 선사들보다 신조 발주가 거의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거의 학습효과로 인해 한국 해운선사들은 이제 쉽게 선박을 신조하거나 매각하지 않으려는 입장이 된 셈이다.

현재 국적선사로서 세계 8위의 컨테이너 선대를 보유 중인 HMM은 과거 현대상선의 파산 직전 정부 조치 때문에 산업은행이 넘겨받아 현재 해양수산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위탁관리하에 있다. 하지만 엄연히 HMM의 사업과 경영 의사결정은 HMM 이사회에서 수행할 것이다. 한때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여 사라진 것이 지금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HMM이 정부의 해운산업 재건과 성장을 위하여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와 더불어 해상물류 공급망의 교란과 지연으로 인하여 세계 주요 항구에서 체선과 체화가 극심했던 반면, 해상운임은 천정부지로 폭등하게 되었다. 팬데믹 기간인 2022년 1월에는 컨테이너운임지수인 SCFI가 5109포인트로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할 정도로 컨테이너 선사들은 초호황을 누리면서 천문학적인 영업이익률을 실현했다. 비록 2023년 9월에 SCFI가 900포인트 선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시황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곧이어 글로벌 물류공급망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SCFI 지수는 다시 2000포인트를 웃돌았고 현재는 14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엔데믹 기간에도 여전히 지구촌 여러 곳에서 전쟁과 운하 문제, 미·중 관세 무역전쟁 등 여러 사건으로 인하여 지금도 해운선사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초호황에 힘입어 HMM은 이제 매출과 영업이익, 부채비율, 시가총액, 보유 선대 등 여러 가지 사업 지표에서 매우 우수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제 HMM의 과제 중 하나는 과거처럼 민간기업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매각이다. 그리고 매각과 더불어 사업 리스크를 최대한 분산하면서 매출 극대화가 가능한 '종합물류사업'의 추진이다.

작년 HMM이 발표한 '2030 중장기 사업전략'에 의하면 5월 25일 현재 93만7000TEU 규모의 컨테이너 선대를 155만TEU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 목표 달성 시점에 가면 경쟁 선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사의 선대 확대 목표를 달성해 있을 것이므로 HMM과의 격차는 여전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단순한 선복량 경쟁에 의존하기보다는 HMM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되면서도 최적화된 해상운송 서비스와 화주 기업에 대한 맞춤형 END-TO-END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 선대, 네트워크, 인적 역량, 영업력 및 재무적 능력을 최적화하여 원하는 목표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HMM은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기업 신용등급 'A+'(안정적)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5월 이후 2년 만의 평가로, 기존 'A-'에서 두 단계 상향된 결과다. 이번 신용등급 상승 배경으로 HMM의 뛰어난 사업 경쟁력과 재무 안정성을 꼽았다. 특히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및 MSC와의 유럽 항로 협력을 통한 선복 경쟁력 확보, 신조선 도입에 따른 원가 경쟁력 강화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영업활동을 통한 안정적인 자금 창출력과 현재 사내에 유보된 14조원 이상의 현금 등 풍부한 유동자산 보유 상황이 컨테이너 시황 변동 시에도 안정적인 경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출 규모가 세계 5위를 되찾은 것처럼 이제 HMM은 글로벌 톱5 해운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한 시동을 걸어야 한다. 해운사업의 특성에 맞게 글로벌 시장에서 우량한 화주기업을 최대한 확대하면서 차별화되고 최적화된 사업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지속적인 매출 증대와 영업이익률의 초과 실현을 통하여 재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해운 관련 사업 다각화를 위한 잠재성장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과 현재 미주항로와 유럽 항로에 집중된 자사의 역량을 확대하여 중남미 항로, 중동 항로, 아프리카 항로, 북극항로 등 새로운 영업항로 개설이 절실하다. 

또한 최근 미국의 해운 함정 MRO 사업 수주와 미·중 관세전쟁으로 반사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K-조선과 K-물류와 함께 K-해운의 중심축으로서 HMM이 적극적인 역할과 능력을 한껏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