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리더를 만나다]④ 함진기 글래스돔 대표 "탄소 데이터 관리해, 공급망 혁신"
기업 탄소데이터 관리하고 해결책도 제시··· 탄소 발자국 관리, 선택이 아닌 생존…"빨리 대비할수록 좋아"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 탄소국경세 청정경쟁법(CCA)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탄소 규제 움직임과 논의가 활발하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대안 마련에 골몰하는 배경이다. 특히 2027년부터 시행될 디지털 제품 여권(DPP)은 유럽 수출 전 제품에 탄소 발자국, 재활용 비율, 원산지 이력을 의무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어 한국 제조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탄소 규제 시장 대응 솔루션을 선보여 주목받는 기업이 국내에도 존재한다. 바로 '글래스돔'이다. 이 회사는 각 지역의 규제에 맞춰 각 기업이 보다 정확하고 손쉬운 탄소배출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글래스돔은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다. 스마트팩토리 기업들이 뒤늦게 탄소 관리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존 컨설팅 업체와 조인트를 하는 것과 달리, 글래스돔은 처음부터 탄소 관리에 특화된 전문 팀을 구성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글래스돔 창업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원래 공정(Process) 전공자입니다. 스마트팩토리 사업부터 시작해서 여러 기업들에 솔루션을 제공하다가, 탄소 관리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2021년쯤부터 글로벌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이 시장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글래스돔은 제조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됐습니다. 때문에 현재 글래스돔은 제조업계에 특화된 소프트웨어 수직통합 최적화 플랫폼인 '글래스돔플랫폼(The Glassdome Platform)'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해당 서비스 구독형을 기반으로 하는 'SaaS' 형태입니다.
솔루션 서비스는 크게 '제품 탄소발자국 솔루션(Glassdome Product Carbon Footprint)'과 '제조 공정 운영 최적화 솔루션(Glassdome Manufacturing Operations)' 두 가지로 이뤄집니다. 두 솔루션 모두 기업이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조 공정 과정의 데이터 수집에서부터 모니터링, 리포팅 등 서비스를 지원합니다.
▷솔루션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처음엔 단순한 탄소 컨설팅 회사로 오해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데이터 관리 솔루션 기업입니다. 핵심은 '제품 탄소 발자국(PCF, Product Carbon Footprint) 관리'라고 보시면 좋습니다. 예전에는 사업장 단위로 탄소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제품별로 각각 얼마나 탄소가 들어갔는지 정확히 산출해야 합니다. 실제 규제와 원청사의 요구사항도 점점 세분화되고 있죠
예컨데 휴대폰 하나를 만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때 필요한 부품이 천 개라면, 이 중 조립 과정에 전체 탄소 발자국의 2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는 부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죠.
많은 물건들이 조립은 '대기업'에서, 부품제조는 '협렵사에서 담당합니다. 조립을 담당하는 대기업들은 자체 측정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갖췄지만, 실제 탄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협력사들은 데이터도, 인력도, 전문성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대기업들도 최근 강화된 기준에 맟춰 물건마다 탄소발자국 수치를 기록해야 하는데 난감한 상황에 처한 거죠.
협력사들 또한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해당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공유할 경우 원가 정보나 기술 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해당부분을 자체적으로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줬습니다. 대기업들이 가장 고민했던 협력사들의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면서도 협력사들의 정보를 지켰냈습니다.
▷데이터 주권문제를 조율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협력사가 자체 시스템에서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고 인증받은 후, 결과와 인증서만 원청사(대기업)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치 해외 출장 갈 때 멀티콘센트 쓰는 것처럼, 커넥터만 바꿔서 각국의 통신 프로토콜(카테나X, 우라노스 등)에 맞춰 데이터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셈입니다.
탄소 발자국 인증서도 어디에서나 범용 가능한 'ISO 14067' 표준을 따릅니다. 해당 기준을 지켜야 서드파티 인증에도 문제 없이 사용 가능합니다. 전체 프로세스를 투영하게 관리하면서도 기업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글래스돔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뽑자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회사들의 경우 기존 스마트팩토리 업체가 탄소 컨설팅 회사와 조인트해서 시장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DNA가 다른 회사끼리 협업하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LCA(전주기평가) 전문가, 공정 전문가, 데이터 엔지니어 등 전문 팀을 구성했어요.
하이브리드 측정 전략 또한 저희만의 핵심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모든 설비에 계측기를 설치하면 정확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글래스돔의 경우 최적화 기술을 통해 최소한의 설비 데이터 측정으로도 인증 가능한 정확도를 확보합니다. 실측 데이터(20~40%)와 글로벌 표준 데이터베이스(60~80%)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데이터 보안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했다는 부분도 저희의 강점입니다. 덕분에 많은 국내외 대기업들이 저희와 협력하고 있어요. 실제 롯데알미늄(현 롯데인프라셀), 조일알미늄, LG전자 전장부품 사업본부 등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예요. 유럽에서는 지멘스도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고요.
▷탄소 저감에 미진한 기업들이 미래에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까요?
배터리 규제만 봐도 명확합니다. 올해부터 탄소 발자국 보고를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D등급 이하는 시장에서 퇴출시킬 예정입니다. 유럽은 배터리별 탄소 발자국 수치를 전부 모은 후 평균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A, B, C, D 등급을 매깁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D등급 이하 제품은 시장 진입 자체를 막는 방식입니다. 즉, 탄소 감축을 하지 않으면 아예 유럽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됩니다.
유럽의 CBAM, 2027년 시작될 DPP(디지털 제품 여권)까지 고려하면, 탄소 관리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CBAM은 역외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제도이고, DPP는 유럽 수출 전 제품에 탄소 발자국, 재활용 비율, 원산지 이력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2027년 배터리부터 시작해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 플라스틱 등 전 산업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협력사들에게 엑셀 기반 탄소 관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협력사들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제대로 된 데이터를 주기 꺼린다는 점입니다. 실제 어떤 중견기업 대표는 정확한 데이터를 입력했더니 원청사 구매 부서에서 '이익률이 이렇게 높았느냐'며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예 가짜 데이터를 입력하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에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글래스돔의 해외 진출 현황과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미국에 본사, 한국과 유럽(독일 뮌헨)에 법인을 두고 있습니다. 유럽은 규제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시장 선점 차원에서 진출했습니다. 유럽에서 직접 느끼는 규제 압박과 한국에서 간접적으로 듣는 정보의 온도차가 큽니다.
베트남과 일본은 현재 파트너십으로 사업하다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 법인을 낼 계획입니다. 베트남은 정부차원에서 유럽에 근접한 탄소 관리 체계를 요구하고 있어서 좋은 시장입니다.
ABI 리서치에 따르면 탄소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은 2032년까지 55억 달러(약 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글래스돔은 2032년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10%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대담=신경훈 편집인, 정리=장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