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ESG 투자 확대··· ‘친환경 기술·넷제로’ 경쟁 본격화
규제 대응 넘어 ‘생존과 도약’ 위한 전략적 포석 HD한국조선해양, 친환경 기술에 7조원 투자 한화오션, ESG 평가 지표 활용한 경영 내재화 추진 삼성중공업, R&D 투자 확대·신사업 발굴에 박차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가 친환경 기술과 넷제로(Net Zero)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분야에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이번 과감한 ESG 투자는 단순한 규제 준수나 이미지 개선을 넘어 산업 생태계 혁신, 미래 시장 선점,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결정이라는 해석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는 올해 탄소 배출 가격 메커니즘을 포함한 해운업계의 탄소 배출 규제안을 확정하고 연말까지 최종 채택할 예정이다. 이 규제는 오는 202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선박 건조에 최소 2-3년이 소요되는 업계 특성상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
한화오션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과 100% 친환경 선박 전환을 목표로 내건 것도,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친환경 선박 기술과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모두 ‘생존’을 위한 선제적 포석인 셈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오는 2030년까지 공정가스 저감, 수자원 보존 등 환경경영 과제에 총 7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 계열사들과 함께 ESG 공시 수준 진단을 마친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기후 주제를 중심으로 재무적 영향 산정과 연결 데이터 수집을 위한 내부통제 방안 마련에 집중할 예정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ESG 투자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선박 탄소중립 연구개발(R&D) 실증설비’ 구축에 주력하며, 내년까지 실증 대상 선종과 기술 범위를 확대해 나갈 전망이다.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는 “투명한 ESG 정보 공시, 탄소 중립 달성, 공급망 지속가능성 강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혁신 기술 개발, 고객 맞춤형 솔루션 제공,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박 건조 생산 시스템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지난 2021년 ESG 추진단을 신설한 이후 본격적인 ESG 경영 내재화에 주력해 왔다. 특히 업계 최초로 조선산업에 특화된 ESG 평가 지표를 개발해 실질적인 ESG 경영 체계를 구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올해에는 이 평가 지표를 활용해 정기적으로 내부 ESG 경영활동을 진단하고, 기자재 및 협력사에도 적용해 상생 및 동반성장의 토대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2023년 통합보고서를 통해 ESG 관점에서 경영 성과, 활동 및 중장기적 전략을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비를 836억원으로 확대한 데 이어 올해에는 친환경 선박 실증설비와 드론 등 미래 신사업에도 200억원 가까이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친환경 연료 선박 수요 증가에 대응해 에탄올, 암모니아 등 대체 연료 추진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친환경 실증설비와 드론 테스크포스(TF)를 별도로 구성하고 신사업 발굴에 198억원을 출자하는 등 미래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로 에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발주가 증가하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조선업계의 ESG 투자는 크게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 탄소중립 인프라 구축, ESG 공시 체계 강화 등 세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정부도 탄소중립 설비투자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며 조선업계의 친환경 전환을 뒷받침하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투자를 통해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 리스크 감소, 투자자 신뢰 제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ESG 공시 의무화에 따른 체계적 대응과 협력사 지원 등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자본시장 변화·공급망 리스크 관리
조선업계의 ESG 투자는 자본시장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글로벌 녹색금융과 ESG 투자 열풍 속에서 친환경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은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현대중공업이 ESG 채권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대표적이다.
또한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법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조선 빅3는 협력사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ESG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협력사 대상 ESG 교육과 컨설팅을 강화하고, 한화오션이 국내 공급 파트너에게도 ESG 평가를 적용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 확보와 리스크 관리를 위한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경제 블록화 흐름 속에서 조선산업의 ESG 투자는 국가 산업 경쟁력 유지와도 직결된다”며 “한국 정부가 친환경 선박 신조 지원과 항만 친환경 연료 공급체계 구축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조선업의 글로벌 위상과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