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을 살리는 것은 경제가 아닌 문화와 환경이다

문화적 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

2025-04-29     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장
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장

한국의 지방은 빠르게 소멸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전국 89개 지역이 인구 감소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정부는 경제적 지원과 인프라 확충을 통해 대응해왔지만, 인구 감소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단순한 일자리나 주거 지원만으로는 지역에 사람이 남지 않는다. 지역에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문화와 환경이다.

환경은 크게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으로 나눌 수 있다. 지리적 환경은 지역의 자연생태계, 지형, 기후 등을 말하며, 문화적 환경은 세대 간 전승된 전통과 고유한 생활양식을 포함한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공동체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OECD 역시 지역 인구 유지를 위해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문화·사회·환경적 자본에 대한 통합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되고 있다. 먼저, 학교, 장수노인, 도서관, 마을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하는 지역 문화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다. 이는 단절된 세대와 공간을 다시 잇고, 지역 내 문화 순환 구조를 활성화하는 기반이 된다.

동시에 농촌과 소외 지역의 디지털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도서관과 디지털 콘텐츠 지원이 필요하다. 정보 격차 해소와 함께 문화 자본의 확산을 이끄는 기반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은 출판과 작가 지원,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문화산업 육성 차원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스웨덴은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지리적 환경인 자연생태계 보존에도 힘썼다. 지역별 전통 행사와 문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친환경 관광을 육성했다. 이러한 정책은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높였고, 인구 유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일본은 지역 문화의 현대적 재구성에 소극적이었고, 농촌 지역의 자연환경 관리 역시 미흡했다. 결과적으로 지역 고유성이 약화되며 청년층 이탈과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었다.

한국은 지역마다 고유한 전통문화와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를 현대적으로 연결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지역 정체성 그리고 장수 어르신의 역사적 가치와 자연 생태를 동시에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 전통문화(문화적 환경)를 살리는 동시에, 지역 생태계와 자연자원(지리적 환경)을 지키는 것이다. 전통문화 기반 콘텐츠 발굴, 지역축제 활성화, 디지털 기록 사업과 더불어, 산림, 강, 해안 같은 지역 고유 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업이 병행돼야 한다.

문화는 공동체를 묶고, 환경은 터전을 지킨다.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을 아우르는 문화적 자본 투자는 지역 주민들에게 ‘여기에 살 이유’를 제공하고, 외부 인구를 유입하는 힘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경제 지원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환경을 살리는 장기적 투자다. 지역을 지키는 힘은 결국 문화와 환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