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직접 사겠다"…기업 '탈 한전' 가시화
전기위원회, 전력직접구매 관련 규칙 개정안 심의 통과 전력 직거래 시 20원 가량 싸…부채 200조 한전 속앓이
기업들이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력을 구매하거나 자가발전소를 운영하는 이른바 '탈(脫) 한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연이어 인상하자 기업들이 전기를 직접 구매하거나 생산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제310차 회의에서 '전력 직접구매제도 정비를 위한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력 직접구매 계약유지기간은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전력 직접구매를 신청한 기업은 최소 3년 동안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기를 쓸 수 있다. 계약 이후에는 연장하거나 다시 한전에서 전기를 구매해야 한다.
전력 직접구매는 일정 규모 이상 전기사용자(기업)가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도매가격(SMP)으로 직접 구매하는 제도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수전설비 용량이 3만kVA(킬로볼트암페어) 이상인 대규모 전기 소비처가 대상이다.
이 제도는 지난 2003년 도입됐지만, 그간 도매가격이 한전 판매가격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활용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한전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잇달아 올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난 3년간 7번, kWh당 최대 80원 올랐다. 이에 따라 도매시장 전기구매가 오히려 더 저렴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전력 직접구매가 kWh당 20원 이상 싸다는 추정도 나온다. 현재 대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kWh당 182.7원 수준이다.
첫 사례도 나왔다. SK어드밴스드는 지난해 말 전력 직접구매를 신청했고, 전기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확정하면서 시행이 가시화됐다. 앞으로 SK어드밴스드는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에서 생산된 전기를 직접 공급받게 된다. 전기료 절감 효과가 입증될 경우, 수요는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전력 소비가 많은 일부 대기업은 아예 자체 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과 2024년 충북 청주와 경기 이천에 585MW(메가와트) 규모 LNG 발전소를 각각 가동했고, HD현대오일뱅크도 충남 서산에 277MW 규모의 LNG 발전소를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한전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 이후 부채는 200조원을 넘겼고, 당분간 요금 인하는 힘든 상황이다. 산업용 전력 고객이 대거 이탈하면 재정 회복은 커녕 오히려 더딘 수익 회복으로 더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가정용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 직접구매는 경쟁을 유도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한전의 독점적 구조가 깨지면서 대형 고객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결국 중소기업과 일반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의 완충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