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 가격이 70만원대?”··· 철강 ‘울고’ 조선 ‘웃다’
후판 가격 놓고 9개월간 협상… 철강·조선업계 갈등 격화 철강업계 “중국산 공세 속 후판 협상, 수익성 위기” 조선업계 ‘원가 절감’ vs 철강업계 ‘수익 방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사이에서 펼쳐진 후판 가격 협상이 9개월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조선업계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올해 초 결정된 지난해 하반기 후판 공급가는 t당 70만원대 후반대로 결정됐다.
통상적으로 원자재 가격은 2개월 전 물량으로 협상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양 업계는 협상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2023년 상반기만 해도 톤당 100만원 안팎이던 후판 가격은 협상 때마다 하락을 거듭했다. 이는 중국산 후판의 시장 진출이 주요 원인이며, 중국산 가격이 국내산 대비 20% 저렴한 70만 원대에 형성된 점이 협상 압력으로 작용했다.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강판으로 선박 건조 원가의 20%를 차지하며, 철강사 매출의 15%에 달하는 전략적 자재다.
3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은 지난해 7월부터 무려 9개월 동안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며 후판 가격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보통 반기마다 이뤄지는데 이번 협상이 길어졌던 이유는 양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철강업계는 협상 당시 원가 상승과 중국산 저가 물량 유입으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가격 인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철광석 가격 상승(2025년 2월 107달러→110달러)과 전기요금 인상이 생산비를 부담시키며, 후판 제조로 인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반면 조선업계는 중국산 후판을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며 가격 동결을 요구했다. 선주들의 중국산 후판 품질 개선에 따른 수요 분산이 협상력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중국산 저가 후판이었다.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2021년 47만t에서 2023년 138만t으로 3배가량 급증했다. 과거와 달리 중국산 후판의 품질이 국내산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오면서 ‘대체재’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산 후판 수입 비중은 2023년 1~11월 기준 63%에 달하며, 조선사들의 30% 이상 수입 의존도가 형성됐다. 이는 철강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든 결정적 변수였다. 지난해 조선업계의 중국산 후판 수입량 증가가 협상 타협점을 더 낮춘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앞으로 ‘후판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후판 가격을 얼마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양 업계의 수익성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재정은 상대적으로 넉넉하지만, 그렇다고 후판 가격을 훌쩍 올려주는 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조선 3사는 후판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국산으로 쓰고 있다.
철강업계는 중국산 후판이 국산 대비 톤당 10만~20만원 저렴하게 유입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특히 철광석 가격 상승과 전기요금 인상이 생산비를 부담시키며, 후판 제조로 인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는 후판 제조 시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후판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협상에서 철강업계는 반덤핑 관세 효과와 철광석 가격 상승을 근거로 가격 동결을 상회하는 인상 요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는 중국산 후판 대체 가능성을 유지하며 가격 동결을 주장할 전망이다. 양 업계의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이 상반기 중에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양 업계의 협상 결렬 시 조선업계는 중국산 후판 의존도 증가를, 철강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후판 가격은 원가 이하 수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국산 후판 경쟁력을 해칠 수 있고 프리미엄화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