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ESG를 깨달았던 선각자의 기록··· SK 최종현 디지털 아카이브 공개

최 선대회장의 육성녹음 3530개 포함 13만여개 자료 디지털로 전환 경영철학과 위기 대응에 대한 지혜 담긴 자료… 미래 경영에 활용

2025-04-02     임호동 기자
SK는 2일 그룹 자료실에 보관해 온 30~40여 년 전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 활동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한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ESG란 말이 태어나기도 전인 1990년대 중반,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설파했던 기업인이 있다. 바로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이다. 한국의 경제성장 시대를 주도했고,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등 시대를 앞서갔던 최 선대회장의 음성과 영상, 문서 등 13만 점의 자료가 디지털 아카이브로 다시 태어났다. 

SK는 2일 그룹 자료실에 보관해 온 30~40년 전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 활동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한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SK는 2023년 창사 70주년을 기념해 최종현 어록집을 발간하려는 목적으로 옛 자료를 검토하는 중, 내용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년 여 동안의 작업 끝에 구축된 '최종현 아카이브'는 최 선대회장의 경영인으로서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국 근현대 경제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최 선대회장은 학자나 기자 못지않게 꼼꼼하게 자신의 활동을 기록했다. 회사에서 각종 회의와 보고, 임직원과의 간담회, 행사 등을 모두 영상, 녹음 테이프, 문서, 사진 등으로 남긴 것이다. 그래서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을 구축면서 중요한 안건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임직원들과 토론하는 장면, 국내외 저명 인사들과의 대담 등이 고스란히 기록됐다.

이번에 복원된 자료는 오디오·비디오 5300건, 문서 3500여 건, 사진 4800여 건 등 총 1만7620건, 13만1647점이나 된다. 최 선대회장의 음성 녹취만 오디오 테이프 3530개로, 하루 8시간씩 들어도 1년 이상 걸릴 분량이다.

최 선대회장은 기업인으로서,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지와 사업보국의 정신 등을 생생한 소리로 남겼다. 한 기업의 기록이자 한국 경제성장기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현재 SK그룹은 사회적 문제 뿐 아니라 기후위기 등 ESG 경영을 리드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런 SK의 방향성은 이미 30~40년 전 최 선대회장이 제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화두로 꺼낸 최종현 

최 선대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미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환경 문제가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던 유럽 국가 리더와의 면담을 앞두고 SK가 법정 기준보다 더 엄격한 환경 기준을 맞추라고 지시했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란 개념이 생기기도 전부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1996년 1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최종현 SK 선대회장(좌)이 조지 H. W. 부시 前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SK 제공

또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도 앞서갔다. 1982년 신입사원들에게 “미국에서도 인재라면 외국인을 기용하는데, 한국에서 지연·학연·파벌을 만들면 안 된다”며 관계 중심주의를 깨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선대회장이 단순히 기업을 일군 기업인을 넘어,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최 선대회장의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에 대한 의지도 상세히 남아있다. 그는 1992년 직원과의 대화에서 “ 연구개발(R&D) 직원도 시장 관리와 마케팅을 경험해야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이해하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런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현재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선두로 나서게 된 원동력으로 해석된다.

또한 그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에 대한 고민을 일찍부터 하고 있었다. SKC 임직원들에게 “플로피디스크를 팔면 1달러지만, 소프트웨어를 담으면 20배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부가가치를 높이는 산업 전략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이 '최종현 아카이브'엔 타 기업 총수들과의 산업 시찰 대화, 외국 담배회사의 유통 협업 제안을 신용 문제를 이유로 거절한 일화, 심지어 김장김치 보관법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SK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의 아카이브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역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들어있다”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자료의 품질을 최대한 높이는 작업을 거쳐 공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