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결정적 순간'을 앞에 둔 한미약품

2025-03-24     신경훈 편집인

우리 산업사를 되돌아보면, 시대의 물줄기를 바꾼 빛나는 '결정적 순간'들이 눈에 띤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1년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보여줬던 장면이다. 조선소를 세우고 싶었으나, 자금이 부족했던 정 회장은, 이렇게 롱바톰 회장의 마음을 얻었다. 그의 도움으로 끝내 영국 바클리즈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받아낸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세울 수 있었다. 그의 결단으로, 한국 조선업은 이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또 하나는, 고 이병철 삼성회장이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사건'이다. 회사 출범 후 직원들조차 "지금이라도 손을 떼야 한다"고 여러차례 이 회장에게 건의할 정도로 국내에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후 1993년, 삼성전자는 세계최초로 256MD램을 개발하고야 말았다. 이후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이어져 왔다.

1989년 한미약품은 스위스 로슈와 세프트리악손 제제 기술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제약업 사상, 첫 기술 수출이었다. 이는 제약업 뿐 아니라 한국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다 나온 것이 아니었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제약산업의 꽃은 신약개발"이라는 신앙과도 같았던 신념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임 회장은 국내 최초로 개량 ·복합신약을 만들어 한국형 신약개발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신념에 따라 한미약품은 신약개발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R&D)비를 쏟아 넣으며, 새로운 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미약품의 도전은 2015년 꽃을 피웠다. 그 해에만 6개 제약사와 총 8건의 신약후보물질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이후 2021년까지 꾸준히 기술 수출을 하며 무려 91억 2400만달러(13조 1500억원)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한국 제약 역사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었다. 제약 산업의 '첫 걸음'들은 언제나 한미약품의 도전에서 나왔다. 

그러나 임성기 창업주 회장의 타계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갑자기 불거진 가족간 경영권 분쟁은 수많은 투자자와 국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경영권을 둘러싼 유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과 반목도 이어지며 한미약품의 신화는 이내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제약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국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장면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최대주주 3인은 '한국형 선진 경영 체제' 도입을 결정하며 한미약품의 '거버넌스 위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미약품의 최대 주주들이 새로 도입하겠다는 전문경영인체제는 주주가 지분만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다. 대주주는 지원하고, 전문경영인이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구조를 갖춰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제약사 머크의 구조를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크는 가족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전문경영인이 체제로 바꿔나간 대표적 기업이다. 현재 전문경영인이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대주주들은 감독 기능만을 맡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한미약품의 주주총회가 오는 26일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제약산업의 꽃은 신약개발"이라는 임 회장의 신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 주총은 임 회장의 신념이 씨앗이 되어,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새로운 밭에 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미약품이 새로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한다면,  이번 주총이 제약 산업은 물론 한국 산업 역사에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으로 남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