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重 ·한화오션 치열한 수수전에 KDDX 사업 또 연기···해법은?
방사청,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자 확정 못 해··· “추가 회의 열 것” 한화오션 ‘경쟁입찰’ vs HD현대중공업 ‘수의계약’ 일각, 양사 ‘종합발주’ 가능성에 무게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또다시 연기하면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의 갈등이 길어지고 있다. 국가적 프로젝트를 둘러싼 양사의 대립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내 방산업계의 미래와 해군력 증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방사청은 지난 17일 열린 사업분과위원회에서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등 세 가지 방식에 대해 논의했으나 과반수 위원이 기존 관례인 수의계약을 지지했지만, 외부위원들의 반대가 강하게 제기되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추가 논의를 위해 오는 27일 분과위를 다시 열고, 최종 결정은 다음 달 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연기는 기존 설계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지지하는 HD현대중공업과 경쟁입찰 방식을 주장하는 한화오션 간 입장 차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관례와 국익을 강조하며 수의계약을 선호하지만, 기밀 유출 사건으로 경쟁입찰 시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라며 공동개발에도 협력할 의사를 밝혔다.
KDDX 사업은 애초 2023년 기본설계 완료 후 지난해부터 착수가 예정돼 있었으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법적 분쟁 및 과열 경쟁으로 인해 1년 이상 지체됐다. 해군 참모총장까지 직접 나서 일정 지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KDDX 사업이 더 이상 지연된다면 해군 전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사 갈등 지난 2012년부터 시작··· 현재도 진행형
갈등의 뿌리는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KDDX 개념설계를 맡았으나, 2013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자료 약 2000페이지를 불법 취득해 공유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했고, 이 사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2023년 11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양사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두고도 고소·고발을 감행하며 법적 분쟁을 이어갔으나 지난해 11월 전격 화해했다. 이는 호주 호위함 입찰(약 10조원 규모)에서 패배한 경험을 통해 양사의 분열이 해외 수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양사의 입장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HD현대중공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기본설계 사업자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권을 수의계약으로 맡는다’는 관행에 따라 자사가 단독으로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사청 개청 이래 19차례 함정 설계에서 충무공이순신함을 제외하면 모두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까지 맡았던 전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HD현대중공업은 “방추위 최종 의결 전에 분과위 경과에 대해 방산업체 차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규정과 원칙에 따라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화오션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양사 모두를 KDDX 방산업체로 복수 지정한 만큼 공동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화오션은 “이번 분과위 안건 보류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추진된 ‘수의계약’ 사업방식의 부당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KDDX 사업은 경쟁입찰 방식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전력화 지연 우려 극복과 K해양방산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동계약 방안에도 대승적으로 협력하겠다”면서 “방사청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방사청, KDDX 자 선정 방식 놓고 ‘골머리’
방위사업청은 애초 지난해 7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으로 이미 8개월 이상 지연됐다. 이에 따라 국가 사업이 연기되어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사청이 기존 방식대로 수의계약을 진행한다면 HD현대중공업이 단독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기존 관행과 효율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이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보안 감점을 받은 상황은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경쟁입찰은 양사가 공정하게 경쟁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한화오션이 가장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연된 사업 일정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공동 설계 및 건조는 양사가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해외 성공 사례로는 프랑스의 나발그룹과 이탈리아 핀칸티에리가 공동 개발한 프렘(FREMM) 호위함이 있다. 이 방식은 비용과 시간이 증가할 수 있지만 양사의 기술력을 결합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
종합발주는 선도함 1척을 제외한 후속함 5척을 각각 2·3척씩 배분하는 방식이다. 방사청이 중점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공동건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양사의 이해관계를 일정 부분 조율할 수 있다.
KDDX 사업자 선정 지연 시 국가 안보에 큰 타격
KDDX 사업은 단순한 함정 건조를 넘어 향후 20년간 국내 방산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전략적 사업이다.
함정의 적기 전력화는 해상경계작전의 완전성 제고를 위해 필수적이다. KDDX 사업 지연은 작전 수행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해양방산 수출과 유지·보수·운영(MRO) 사업도 차질이 예상된다. KDDX 사업 지연은 한국 해양방산의 국제 경쟁력과 관련 산업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HD현대중공업이 단독 수주할 경우 잠수함·구축함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80%를 넘어섰던 지난 2010년대 체제로의 회귀가 예상된다. 반대로 한화오션가 선정된다면 조선업계 구조조정 이후 재편된 방산 시장의 새로운 균형을 의미한다.
박범진 경희대 안보전략 겸임교수(예비역 해군 대령)는 “KDDX 사업의 지속적인 연기는 해군의 전력 증강 계획을 크게 지연시키고, 국가 안보와 방위산업 발전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신속한 결정과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의 경쟁보다는 수의계약을 통해 양사가 각각 3척씩 나눠 건조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