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꿈의 기술' 들어오는 울산...한국기업이 살 길은?

에쓰오일 석화시설 '샤힌 프로젝트' 시설 공사 돌입... 국내 첫 COTC …천문학적 비용에 국내 기업은 '언감생심'

2025-01-06     진경남 기자
에쓰오일의 대규모 석유화학 생산설비 구축사업 샤힌 프로젝트가 지난달부터 설비공사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석화산업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 /에쓰오일 제공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 에쓰오일이 울산에 진행중인 '샤힌 프로젝트'가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의 핵심은 '꿈의 유화 기술'로 불리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정유석유화학통합공장(COTC)'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설이  2026년 가동되면, 석유화학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 '꿈의 기술' TC2C...석유화학업계 '게임 체인저' 

아람코가 개발한 TC2C는 원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공정이다. 기존 석화 기업들은 원유에서 나프타를 생산하고 다시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만든다. 그런데, TC2C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원유에서 직접 에틸렌을 뽑아낸다. 에쓰오일은 무려 9조 2580억원을 투입해 온산국가산업단지에 TC2C 공장 부지조성공사를 마치고 본격 시설공사에 돌입했다. 에쓰오일 측은 이 공장이 가동되면 기존 나프타 분해 공정 대비 자본 지출과 운영 비용을 30~40%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나프타 분해 설비(NCC)와 COTC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중간과정을 거치는 NCC의 수율은 30% 정도인데 반해, COTC의 수율은 7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힌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에쓰오일은 연간 약 320만톤의 석유화학제품을 추가로 생산하게 된다. 에틸렌 연간 생산량은 180만톤으로 단일 설비 기준 세계 최대 설비다.

에쓰오일은 이를 통해 연료유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정제마진 등 외부 여건에 취약한 정유사의 한계를 넘어 안정적인 수익원을 마련해 종합석유화학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아람코는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을 글로벌 석유화학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시장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에쓰오일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 석유화학산업 전체에도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전망했다.

◇ 국내 석화산업 지각변동 예고…NCC로는 대항 어려워

한편 '샤힌 프로젝트'로 국내 석화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더 크다. 중국의 경기침체가 길어지며 중국 석유화학업체들이 저가로 제품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COTC까지 가동되면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기업들은 왜 COTC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개발과정도 긴데다, 초기 투자자금이 천문학적이라서다. 

COTC 기술은 2014년 싱가포르에 처음 시도된 뒤, 10년 가까이 연구개발 과정을 거치고 있다. COTC 설비는 초기 투자비용이 최소 수 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자금력이 풍부한 중동의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가 최대 주주라 9조원이 넘는 투자를 쏟아 넣은 것이다. 

◇ COTC 천문학적 투자 필요…"고부가제품 개발이 현실적"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COTC 설비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더욱이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제품을 뽑는 기술 개발이 안됐고, 전문 인력도 없어 언감생심의 처지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아직 중동과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생산원가 등을 감안할 때 범용 석유화학 시장에서 COTC가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지만 국내기업이 이 기술을 개발할 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라며 "우리는 중국과 중동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사업 재편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