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이 식량작물 수분에 끼치는 가치, 매년 500조 이상
‘기후변화’로 곤충이 유발하는 식량그물 붕괴 현상 나타나

벌레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지구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진=Pixabay)
벌레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지구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진=Pixabay)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기후변화로 지구에서 곤충이 사라진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과학칼럼니스트 정유희씨는 최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과학향기’에 기고한 칼럼에서 “곤충이 사라진 세계를 그리는 시나리오는 무엇이 됐든 비극적”이라면서 “과학자들은 아마겟돈, 지구 종말, 악취와 침묵 같은 단어들을 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씨는 곤충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했다. 정씨에 따르면 곤충은 기본적으로 분해에 필수적이다. 영양분을 순환시키고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며 식물을 성장시켜 생태계가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 정씨는 “곤충산업의 전망이 좋다는 말이 무색하게, 곤충은 이미 여러 산업에 걸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가령 수십억 종의 벌레들은 매년 식량 작물의 4분의 3에 꽃가루를 나르는데 이는 금전적으로 500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딱정벌레가 호주 축산업에서 연간 4000억원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호주에선 소를 들여온 후로 소 배설물을 분해할 딱정벌레를 수입해 방출하기까지 악취에 시달렸어야 했다면서 소 배설물 분해에 기여하는 딱정벌레의 가치가 연간 약 4000억원 규모라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미국 렌슬레어 폴리테크닉대학의 열대 생태학자 브래드 리스터는 최근 미국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서 1970년대와 2010년대 데이터를 비교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푸에르토리코 루킬리오 열대림의 동일 장소에서 포충망으로 포획한 곤충 및 거미의 마른 중량은 약 40년 새 4~8배 감소했고, 바닥의 끈끈이로 포획한 경우 30~60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터에 따르면 도마뱀 새 개구리 같은 곤충 포식자의 수도 곤충 수에 평행선을 그리며 심각하게 줄고 있다. 씨앗과 과일을 먹는 불그레한메추라기비둘기(Ruddy Quail Dove)의 경우 개체 수 변화가 감지되지 않은 데 반해 곤충만 먹고 사는 벌잡이부채새(Puerto Rican Tody)의 수는 무려 90%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즉 먹이사슬의 하층부가 급감함에 따라 연쇄 작용으로 상층부에서 영양 결핍 현상이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산림 식량 그물이 붕괴되고 있다는 의미였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1930년대부터 농약이나 서식지 손실로부터 철저히 보호된 이 자연림에서 이러한 붕괴 현상이 나타난 주원인으로 리스터는 기후변화를 꼽았다. 40년 동안 루킬리오 열대림의 평균 최고기온이 약 2.0℃ 상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보다 3~5도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WMO는 지난 2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24)에 앞서 발간한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2100년이면 지구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3∼5도가량 높아질 걸로 예측했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지구 온도가 2도 이상만 올라도 여름철 폭염으로 유럽에서만 수만 명이 죽고 세계 각종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씨는 “곤충에 의존해 사는 우리는 그들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누군가 말했든 곤충이 멸절하기 전에 인간이 먼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라면서 위태로운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뿔소가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배는 반면 나방은 종에 따라 수천 개의 알을 품는다”면서 “과학자들은 이러한 곤충의 엄청난 번식력이 자연의 탄력성이 발휘되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태계를 지탱하는 평범한 이들의 번식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들의 공간을 빼앗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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