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라이프] 채식 걸음마 한국… 식탁 소수자도 행복하려면
[비건라이프] 채식 걸음마 한국… 식탁 소수자도 행복하려면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8.1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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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식인구 100만… 끼니마다 고역
유럽엔 채식 슈퍼마켓·인증마크도 운영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독일에만 800만명으로 추산될 만큼 전세계적으로 육식을 절제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채식주의자'가 늘어난다. 건강한 삶, 동물복지, 환경보호 등 채식주의의 동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소수의 문화다. 채식주의에 대한 막연한 반감도 없지않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 법.제도.문화적 국내외 현황, 채식주의 기본지식을 알아보는 Q&A와 인터뷰 등을 통해 채식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획기사 '비건 라이프'를 마련했다. 이제 식성도 '다양성'이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이태원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을 찾았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은 고기뿐 아니라 우유,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다. 완전 채식 식당이 가능할까? 가득 찬 테이블 사이로 종업원들이 쉴새 없이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메뉴판은 여느 레스토랑과 다를 게 없었다. 버거와 파스타, 샌드위치 등 일반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버거의 빵 사이로 패티가 먹음직스러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수제 버거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늘어진 치즈와 빨간색 토마토가 패티를 감쌌다. 버거를 시킨 손님에게 맛을 물어봤다.

“고기 질감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많은 재료가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질 만큼 풍부한 맛이 난다.”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이태원에 있는 플랜트에서는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서창완 기자)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이태원에 있는 플랜트에서는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서창완 기자)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가게를 운영하는 이미파 플랜트 대표는 콩, 검은쌀, 비트, 버섯, 호박씨 등 여러 곡물을 넣어 만든 패티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09년에 완전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이 됐다. 그 전 2년 동안은 달걀, 우유 등은 먹는 부분 채식주의를 했다.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채식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3년 베이커리로 시작했던 가게는 이제 다양한 메뉴를 갖춘 2호점까지 열었다. 5년 동안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이미파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는 외국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한국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면서 “비건의 뜻도 모르던 사람들이 호기심에 찾아왔던 예전과 달리 비건 자체가 많아진 걸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채식인구 100만… 아직은 걸음마

한국채식연합은 우리나라 채식인구를 전체 인구의 2% 정도로 추정한다. 100만~150만명 수준이다. 10년 전 추정치인 1%와 비교하면 2배 정도 늘었다. 비거니즘은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힌다. 음식 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의류 및 화장품과 생활용품에서도 동물 성분을 배제하거나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등 범위도 넓어졌다.

늘어나는 채식 인구수에 견줘 인프라 확보는 더디다. 이미파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판매 중인 비건 치즈의 경우 브랜드가 한 두 개에 불과한데, 유럽이나 미국은 굉장히 다양하다”며 “다양한 비건 식품을 접할 수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플랜트의 비건 버거를 먹어본 한 손님은 "많은 재료가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질 만큼 풍부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페이스북 캡처)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플랜트의 비건 버거를 먹어본 한 손님은 "많은 재료가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질 만큼 풍부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페이스북 캡처)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 비건에게 힘든 점은 더 있다. 식품을 고를 때 성분을 일일이 다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마트 등에서 파는 제품들에는 수십 가지 성분이 작은 글씨로 쓰였다. 예를 들어 그중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해 만든 탈지분유 하나만 있어도 비건은 그 제품을 먹을 수 없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우리나라도 유럽 등 외국처럼 제품에 비건 채식 마크 하나만 표시해둘 수 있다면 수고를 덜 수 있다”면서 “알레르기로 성분이 맞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건들의 고충은 또 있다. 한국채식연합은 비건 레스토랑을 전국 350~400개로 추정한다. 문제는 이들 음식점 외에는 어디서도 믿고 채식 음식을 고를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 채식 음식이라고 알려진 비빔밥에는 고깃가루, 된장국에는 멸치 육수가 들어간다. 한국 대표 음식인 김치도 액젓, 젓갈 등이 들어 있어 비건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이원복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도 각 식당마다 2~3가지 메뉴라도 비건들이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채식 제품을 마련하면 식당 홍보나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에 꽃피는 채식주의… 독일 채식주의 인구 800만명

유럽은 채식주의 트렌드가 꽃피는 곳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건강뿐 아니라 동물 윤리, 생태계 보호, 윤리적 소비를 이유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20~30대들이 늘어난다.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 비거니즘도 유행이다. 옷, 가방, 신발을 살 때도 동물 가죽 사용 여부를 따지는 등 광범위하다.

2011년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유럽 최초의 채식 슈퍼마켓 체인 비건즈(Veganz)가 문을 열었다. 비건즈가 있는 쉬벨바이너 거리는 젊은 층 사이에서 ‘비건 거리’로 통한다. 채식 제품만으로 꾸려진 이곳에서는 45가지 종류에 달하는 우유와 80여 가지에 달하는 비건 치즈 등이 판매 중이다. 국내와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비건즈는 수천 가지의 비건 식품뿐 아니라 화장지, 세제, 콘돔까지 구비했다.

독일 채식주의자협회에 따르면 2016년 독일 채식주의 인구는 800만명에 가깝다. 이 가운데 약 200만명이 비건으로 추정된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채식주의가 가장 활발한 나라다. 유럽 전체의 비건 푸드 시장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1위다. 연방통계청 및 독일 채식협회에 따르면 독일 채식 시장은 매년 평균 15%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다.

미국도 채식 식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비육류제품 시장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5.1% 성장세를 기록했다. 미국은 인구 3.3%인 약 800만명이 채식주의로 집계된다.

영국에선 2006년 15만명이었던 비건 인구가 10년 만에 54만2000명으로 늘었다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조사 결과 비건 인구의 42%는 15~34세였고,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도시 거주자 비율이 88%로 월등히 높았다.

국가공식인증제도는 없지만 채식협회가 발행하는 인증마크가 활발히 운영된다. 미국은 미국채식협회(AVA) 인증과 비건액션(Vegan Action) 인증이 보편화 됐다. 독일·영국 등 유럽의 경우 유럽채식협회(EVU)의 ‘V-라벨(Label)’ 인증이 가장 선호 받는다. 이 라벨은 유럽 27개국에서 통용된다는 장점이 있다.

◇채식주의자들도 행복한 세상을 위해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채식단체연대(전국 30여개 채식관련 단체)는 교육감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했다. 알레르기 질환이나 대사증후군 등으로 식이요법을 원하는 학생들이 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채식 선택 급식제)와 주 1회 채식 급식, 채식 먹거리 교육 공약을 제안했다.

호의적인 답변을 보내온 후보 15명 중 12명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서울시를 비롯해 부산, 인천, 광주, 울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 12개 지역이다. 한국채식단체연대는 “학교에서부터 채식 선택 급식제가 필요하다”면서 “채식 선택권이 다양하게 도입돼 지나친 육류 위주의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으로 채식주의자가 설 자리도 조금씩 넓어졌다. 매년 수천 명이 참가하는 채식 문화 축제, 다양한 채식 동호회, 하루 평균 250여 명이 이용하는 서울대 채식 뷔페 감골식당 등이 국내 채식 시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최근 채소와 경제를 조합한 ‘베지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신세계푸드가 개발한 비건 베이커리. (신세계푸드 제공)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신세계푸드가 개발한 비건 베이커리. (신세계푸드 제공) 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신세계푸드는 우유, 버터 등 동물성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식주의자용 ‘비건베이커리’를 개발해 지난해 9월부터 판매 중이다. 이 ‘비건베이커리’는 국내 최초로 영국채식협회로부터 비건 베이커리 인증을 획득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들이 무조건 채식만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미파 대표는 “너무 완벽하게 채식을 할 필요는 없고, 할 수 있는 만큼 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 끼 식사만이라도 바꿔보려는 작은 노력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가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도 이어지길 소망했다.

이원복 대표 또한 완벽한 채식 세상을 꿈꾸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채식에 호감 있는 인구는 전체의 20~30%로 추정된다”면서 “채식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생겨나고 외국인 관광객 중에도 채식주의자가 많은 만큼 채식을 더 쉽게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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