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로 풀어보는 채식주의
유형에 따라 유제품도 먹어
채식만으로도 충분한 영양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독일에만 800만명으로 추산될 만큼 전세계적으로 육식을 절제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채식주의자'가 늘어난다. 건강한 삶, 동물복지, 환경보호 등 채식주의의 동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소수의 문화다. 채식주의에 대한 막연한 반감도 없지않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 법.제도.문화적 국내외 현황, 채식주의 기본지식을 알아보는 Q&A와 인터뷰 등을 통해 채식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획기사 '비건 라이프'를 마련했다. 이제 식성도 '다양성'이다.

 

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다양성 존중의 상징인 무지개 로고. 사진의 무지개는 식물성인 파프리카와 컬리플라워로 만들었다. 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채식주의는 이미 세계적 문화다. 육식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동물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성찰에서 출발했다. 육식 위주 식단이 건강을 위협한다며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주의자는 약 100만~150만명 정도다. 한국 인구의 2% 비율이다. 국내 채식 베이커리나 레스토랑도 300여개로 추정돼 이전보다 증가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채식급식정책에 관심을 보이는 교육감 후보도 많았다. 건강, 인권, 다양성 존중 차원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선 채식 문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실정이다. 육식이 지배적인 한국에선 ‘채밍아웃’(채식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양성 문화로서 등장한 채식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풀’만 먹으면서 필수 영양소를 충당할 수 있는지,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해 성장이 더뎌지는 것은 아닌지 등 ‘채식’과 관련한 의문에 답하고, 올바른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채식주의 기본지식을 Q&A로 풀어본다.

1.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는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엔 편견이 담겨있다. 베지테리안(Vegetarian)의 어원은 'vegetus'다. 여기엔 활력있는, 활기도는, 활발한, 생기있는, 역동적인 등의 뜻이 담겨있어 '채식'보단 활력식, 생명식, 건강식 등이 적절하다.

한국에선 이 'vegetus'가 채소류만 한정하는 ‘채식’으로 번역되면서 지금까지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라는 우스갯소리만 봐도 채식이라는 단어가 채식주의자를 향한 편견에 힘을 더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풀’만 먹는 건 아니다. 동물성 식재료를 일절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채식주의자 유형별로 섭취하는 음식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2. 달걀, 생선, 게도 먹을 수 있다?

 
(그래픽 황인솔 기자). 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 황인솔 기자). 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채식주의자는 베지테리언(vegetarian)과 세미베지테리언(semi-vegetarian)으로 나뉜다.

베지테리언은 베지텔리언(vegetalien), 비건(vegan), 오보(ovo), 락토(lacto), 오보-락토(ovo-lacto) 다섯 종류로 나뉜다.

베지테리언과 비건은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달걀이나 유제품도 섭취하지 않는다. 특히 비건은 식습관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동물을 착취하거나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의 소비를 배제한다.

오보는 채식에 달걀까지 허용한다. 락토는 채식에 유제품만을, 락토-오보는 달걀과 유제품을 모두 섭취한다.

세미베지테리언은 ‘플렉시테리안’ ‘폴로베지테리안’ ‘페스코베지테리안’으로 나뉜다.

플렉시테리안은 평소 비건이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육식을 한다. 폴로베지테리안은 달걀과 우유, 유제품을 허용하고 조류와 어류까지 섭취한다. 단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 페스코베지테리안도 흰살생선과 갑각류, 달걀, 유제품까지 허용한다.

‘생식주의’도 채식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채소나 과일, 곡식을 날것으로 섭취하거나 믹서로 갈아 주스로 먹는다. 달걀이나 생선 등 동물성 식재료를 날것으로 섭취하기도 한다.

3. 임산부나 아이가 채식을 해도 괜찮을까?

이미 전 세계 많은 연구자들이 균형잡힌 채식주의 식단으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성장기나 청소년기 아이들과 임산부도 마찬가지다.

2010년 캐나다 소아과 위원회가 발표한 연구 논문 ‘임산부와 청소년의 채식식단’에 따르면 균형 잡힌 채식을 한 아이들은 채식주의자가 아닌 아이와 비교했을 때 마찬가지로 적정량의 에너지를 섭취했다.

임산부에게 필수 영양분인 철분과 단백질도 채식 식단으로 충분했다. 비건이 아닌 경우 계란, 우유 등을 포함한 채식식단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비건 임산부는 건과일, 통밀빵, 후무스나 렌틸콩 등 두류로 철분과 단백질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실제 캐나다뿐 아니라 영국식품위원회, 미국영양학협회, 유럽채식연합(EVU) 등 세계 각국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식단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식주의자에게 주로 부족한 영양분으로 꼽히는 비타민D, 비타민B12, 철분도 채식식단으로 보충할 수 있다.

4. 채식으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을까?

바른 채식의 핵심은 통곡류, 콩류, 견과류, 종실류, 채소류, 해조류, 과일류를 골고루 먹는 것이다. 특히 균형잡힌 채식식단을 위해선 철분과 단백질, 비타민B12와 비타민D 섭취에 신경써야 한다.

채식주의자 유형이 많듯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식재료 범위도 다양하다. 세미베지테리안의 경우 흰살생선이나 조류로 단백질 섭취에 무리가 없다. 락토나 오보 채식주의자도 계란, 유제품으로 균형 잡힌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비건의 경우 견과류, 렌틸콩이나 완두콩 등 두류, 두류로 만든 후무스나 두부 등으로 철분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임산부와 청소년기 아이라면 특히 철분과 비타민 섭취에 더 주의해야 한다. 철분을 많이 함유한 식재료는 호박씨나 검정콩 렌틸콩 등 두류, 양배추 잎이나 브로콜리, 오크라 등 검푸른색 채소, 통밀빵, 식사대용 시리얼, 건과일 등이다.

비타민B12는 음식물을 에너지로 변형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몸속에 충분하지 않으면 소화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는 동물 식재료에서 주로 얻을 수 있지만 채식식단으로도 충당할 수 있다. 비타민B12를 함유한 채식 식재료는 식사용 시리얼, 달걀, 유제품, 효소 추출물, 두류 등이다.

비건의 경우 아몬드, 시금치, 버섯으로 비타민B12를 섭취할 수 있고 보충제까지 더한다면 더욱 좋다.

칼슘 흡수를 위해선 쌀이나 오트밀로 만든 우유, 참깨를 으깬 스프, 건과일, 갈색 또는 흰색 빵을 포함해 식단을 구성할 수도 있다.

오메가 3 지방산도 아마씨유, 유채씨유, 콩기름, 두부, 호두, 계란 등으로 보충할 수 있다.

5. 채식은 맛이 없다?

탄수화물을 끊는다면 모를까 채식을 한다고 먹을 것이 없진 않다. 파스타나 피자도 버섯이나 시금치를 곁들어 먹을 수 있다. 두부 스테이크도 가능하다. 외국에선 채소 파히타(토르티야에 싸서 먹는 멕시코 요리), 라따뚜이(각종 채소를 우려 만든 스튜), 버섯을 넣은 라비올리 등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시피가 많이 알려졌다.

세미베지테리안이라면 음식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페스코베지테리안은 일식집에 갈 수도 있고, 백반집에서 고등어를 먹을 수도 있다. 조류까지 섭취하는 폴로 베지테리안은 어려움없이 외식 메뉴를 정할 수 있다.

버섯을 넣은 라비올리/그린포스트코리아
버섯 파스타(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6. 채식은 기원전부터 있었다?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본 피타고라스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비건’이었다.

‘역사 속 채식인’(살림 출판사)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고기를 먹는 것과 물질주의가 금기였다. 피타고라스는 “물고기부터 철학자까지 모두 형제 관계이고, 영혼은 형태 간 이동을 할 수 있다”고 믿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 학교 학생은 식물성 흰색 망토만 입었으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양털로 만든 옷도 사용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다.

플라톤은 “바른 정치는 채식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인간의 환생인 동물과 달리 식물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생존에 있다”고도 밝혔다.

흔히 채식주의자에게 “식물도 동물이 도축될 때처럼 고통을 느끼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플라톤은 “식물의 혼은 인간이나 동물의 혼과 다르다"며 "동물은 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윤회 속에서 인간이 변한 것이므로 동물을 잡아먹는 행위는 제 동족을 잡아먹는 일이지만 식물은 인간의 몸이 마모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한 먹을거리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적 동물보호운동단체 '페타'(PETA) 등 일부에서는 예수의 제자 상당수가 채식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예수도 채식주의자였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예수가 죽은 후 기독교는 수많은 분파를 이뤘고, 이 중 가톨릭교회가 기독교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정신 중 하나였던 채식문화를 없앴다고 주장한다.

7. 나 혼자 채식한다고 세상이 변할까?

1kg의 소를 소비하는 데 1만500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이는 우리가 1년간 매일 샤워할 때 소비하는 평균 물의 양이기도 하다. 반면 1kg의 감자는 900리터의 물만 필요로 한다.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1kg의 소를 소비하는 데 1만500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이는 우리가 1년간 매일 샤워할 때 소비하는 평균 물의 양이기도 하다. 반면 1kg의 감자는 900리터의 물만 필요로 한다.(비건 임팩트)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프랑스 비건 협회인 ‘비건 임팩트’에 따르면 채식은 환경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물론 토양 황폐화와 물부족 현상도 개선할 수 있다. 1kg의 소를 소비하는 데 1만500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이는 우리가 1년간 매일 샤워할 때 소비하는 평균 물의 양이기도 하다. 반면 1kg의 감자는 900리터의 물만 필요로 한다.

비건 식습관은 삼림파괴도 막는다. 동물사육은 아마존 산림파괴 원인의 80%를 차지하고, 전세계 삼림파괴의 70%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축산은 지구온난화, 삼림파괴, 공기 및 수질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등 시급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채식주의 식단은 해양오염, 생태계 교란 등을 막고 식량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7억7500만톤의 옥수수·밀과 2억톤의 콩이 사육동물을 위해 유통된다. 전세계 생산량 90%에 달하는 이 어마어마한 양의 곡식을 사람에게 공급한다면 최소 20억명이 기근을 해결할 수 있다.

8. 그래도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 힘든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 채식주의자를 ‘유별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도 걸림돌이다.

한국은 해외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식재료에 ‘비건 용’ 혹은 ‘베지테리안 용’이라는 마크가 표기되지 않을뿐더러 주변에서 채식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채식주의자를 이른바 ‘유별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이러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 별 탈 없이 채식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다면, 또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 선택의 폭이 넓다면 “채식하면 뭘 먹냐”는 질문은 받지 않아도 된다. “채식주의자 한 명 때문에 음식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걱정을 할 일도 없다.

마찬가지로 음식 원재료가 무엇인지 물어보기 전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재료를 썼는지, 육수는 무엇으로 낸 것인지 등 꼼꼼히 표기돼있다면 채식주의자가 ‘예민하고 까다롭게’ 이것저것 따질 일도 없다.

결국 식습관은 기호다. 채식주의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을 문화적으로 존중할 수 있는 제도나 환경이 마련된다면 채식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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