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C 67차 총회서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지정 좌절
9월초 보츠와나서 코끼리 90마리·코뿔소 5마리 폐사

페로제도에서 매년 행해지는 고래잡이문화. 바다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페로제도에서 매년 행해지는 고래잡이문화. 바다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지구는 인류의 땅이기 전에 자연의 땅이었다. 인류의 조상은 자연이었고, 자연은 곧 우리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문명과 발달이라는 이름 하에 인간이 땅을 파헤치고 바다를 유영하면서부터 자연은 형체를 잃어갔다.

비인간동물들이 머물 곳을 잃은 채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 자연과 동물의 수난시대에 이들의 ‘고향’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상업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좌절되기 일쑤였다.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역’을 마련하자는 외침또한 매번 메아리처럼 돌아와 같은 자리에 머물 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생명권 박탈당한 고래들

대서양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고래종을 위한  ‘성역’ 마련의 꿈이 이번에도 좌절됐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67차 총회가 끝났다.

이번 총회에서 주목을 받은 것중 하나는 약 2000㎢에 달하는 고래류들의 '성역'이 될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지정과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 채택건이 있었다.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South Atlantic Whale Sanctuary) 지정은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지난 몇 년간 가장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적도 아래부터 남극해에 이르는 남대서양 해역은 멸종위기종인 보리고래와 참고래의 주요 서식처이지만 만연한 고래 포획 때문에 대형 고래들의 개체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이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가봉,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대서양 연안 국가들이 상업 포경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지역 전체를 고래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포경의 위험뿐 아니라 어선과의 충돌 등과 같은 여타의 위험으로부터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안건이 또 다시 부결됐다. IWC 회원국인 총 89개국 중 39개국만이 찬성표를 던졌고, 한국을 포함해 일본, 러시아,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25개국이 반대표를, 3개국이 기권표를 내 결국 75%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전 세계에 지정된 고래보호구역은 총 2곳 뿐이다. 인도양과 일본 소유의 남극에 위치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986년부터 상업적 포경이 금지됐으나 일본과 노르웨이, 아일랜드 등 국가에게는 사실상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과학을 명목으로 포경을 하고 있으며, 노르웨이와 아일랜드는 상업적 포경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올해 포획 가능한 밍크고래의 수를 2017년보다 28% 늘려 총 1278마리를 포획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일본은 이번 67차 총회에서 상업목적의 포경을 재개하자고 제안했지만 부결됐다.

IWC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에서 포획된 고래는 총 1380마리. 이중 일본이 과학포경으로 596마리를, 포경 찬성국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가 상업포경으로 각각 432마리와 17마리를 잡았다.

프랑스 통계사이트인 콩소글로브(Consoglobe)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포획된 고래는 약 21만4090마리로, 매일 820마리의 고래가 포획되는 셈이다.

특히 노르웨이와 일본의 경우 고래를 잡는 ‘전통문화’가 있어 매년 수십에서 수천 마리의 고래가 포획돼 처참히 학살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노르웨이 페로제도에서는 20여 분 만에 돌쇠고래 161마리와 대서양낫돌고래 8마리가 학살됐다. 일본 다이지 해변에서도 같은해 9월 포획된 돌고래 수가 1940여 마리에 이른다. 이는 전년에 비해 120여 마리 늘어난 숫자다.

페로제도에서 진행되는 고래잡이 모습을 보면 해안가에 건져올려진 고래들은 모두 같은 부위(머리)가 도려져 내장과 뇌 등이 길거리를 온통 피로 물들인다. 이 전통문화의 가장 큰 문제으로 사람들은 ‘무감각이라고 말한다.

고래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도 이들을 보호할 법 하나 마련돼 있지 않다.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런 고통도 없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변호되는 자리에서 너나할 것 없이 죽은 고래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머리가 베어져 해안가에 건져진 고래떼.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머리가 베어져 해안가에 건져진 고래떼.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 끝내 무너진 코끼리들의 ‘성역’

'성역'을 외치는 몸부림은 비단 고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9월 초 보츠와나에서는 90마리의 코끼리와 5마리의 코뿔소가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보츠와나는 코끼리들의 성역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주변국들에 비해 보호시설이 잘 돼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곳에서마저 코끼리들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몇몇 관광객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수천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자연보호지역인 ‘오카방고강'의 델타지역에서 지난 4일 코끼리들의 사체가 발견됐다. 이들은 전부 상아가 뽑힌 채 죽어있었다. 상아는 주로 보석, 젓가락, 동상 등을 위한 재료로 쓰여 아시아로 밀매매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89년 국제적으로 상업적 용도의 코끼리 상아 거래가 금지된 바 있지만 계속해서 상아 밀거래는 횡행하고 있다.

코끼리 생태학자인 마이크 체이스는 "이곳 생태계는 많은 코끼리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에 의해 학살당했다“면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성역을 외치는 몸부림은 비단 고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성역을 외치는 몸부림은 비단 고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8.9.18/그린포스트코리아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는 현재 35만마리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개체수의 3분의 1이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 언론 매체 플라넷스코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학살당한 코끼리 수는 2만4996여마리다. 2007년부터 2014년 사이 아프리카에서 학살당한 코끼리 수는 전체 개체수의 3분의 1수준인 14만4000마리다.

이를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은 “불행히도 코끼리들의 ‘성역’마저 끝내 무너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 안전관리가 잘 돼있기로 유명한 이 지역에서 어떻게 밀렵꾼들의 침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정치적 무관심을 이유로 꼽았다. 모그위치 마시시(Mokgweetsi Masisi)가 올해 초 보츠와나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부임하면서 총기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밀렵퇴치부대를 무장해제했기 때문이다. 생태과학자들은 이로 인해 밀렵이 더욱 성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에 따르면 매 15분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죽임을 당한다. 매일 약 100여마리의 코끼리들이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에 의해 학살되며, 이는 1년에 2만 5000마리에서 3만 5000마리로 추정되는 수치다. 아시아로 넘겨지는 상아 밀매매는 그야말로 '세계기록'을 달성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UICN) 관계자는 “이 같은 떼죽음은 아프리카에서 25년만에 처음”이라면서 “멸종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라고 경고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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