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쓸’ 배민지 편집장 인터뷰

제로웨이스트 매거진 '쓸(SSSSL)' 2호.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제로웨이스트 매거진 '쓸(SSSSL)' 2호.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4754만여명이 도시민이다. 인구의 92%가 국토 17%에 몰려 산다. 도시는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쓰레기들을 배출한다. 플라스틱, 비닐, 음식물 등이 생산과 소비를 거쳐 매일 배출되고 또 사라진다. 도시가 탐욕적인 건 그 사라짐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시는 매일 깨끗한 얼굴로 시민들을 만나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내세워 생산과 소비를 장려한다. 

여러 도시 가운데 서울은 더 특별하다. 모여 사는 사람만 1000만명. 지옥철, 교통체증 등의 단어가 익숙한 이곳은 지난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도 겪었다. 집 앞 재활용품들이 수거되지 않는 며칠은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서서히, 하지만 어느새 눈 앞까지 다가온 낯선 공포는 사람들을 ‘제로웨이스트’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생활 속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것은 재활용하는 삶을 말한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해 온 배민지 ‘쓸(SSSSL)’ 편집장을 만났다. ‘쓸’은 쓰레기 없는 삶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 제로웨이스트 매거진이다.

잡지명 ‘쓸’은 우리가 앞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을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탄생됐다. 알파벳 S 4개와 1개의 L은 '소비를 줄인(small) 느리며(slow)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생활(social life)'을 의미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저도 지칠 때가 많죠. 주변에 시작하신 분들도 현실적으로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다거나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지금도 하나씩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거든요. 조금씩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되는 일이죠.”

배민지 편집장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직접 사용하는 물품들. 배 편집장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바쁘지 않은 시간을 이용해 포장 대신 직접 가져간 용기에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배민지 편집장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직접 사용하는 물품들. 배 편집장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바쁘지 않은 시간을 이용해 포장 대신 직접 가져간 용기에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배 편집장은 3년여 전부터 이런 삶을 실천해 왔다. 그 전에는 업사이클 관련 업체에서 일했다. 환경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 서울에서 업사이클 문화가 붐을 이루고 있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폐기물로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이 쓰레기를 줄이는 실질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쓰레기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제로웨이스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소비하고 배출하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했죠.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처음 인지한 건 3년 반쯤 전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을 하고 나서부터에요. 배달전문이었던 매장은 모든 제품을 포장했죠. 본사에서는 비닐봉지로 밀폐된 재료들을 가맹점에 뿌려요. 봉지 뜯고 손질하는 동안 버려지는 쓰레기가 엄청났죠.”

배 편집장은 업사이클 일을 그만두고 난 뒤 지난해 11월 법인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포장 없는 작은 식료품 매장을 만들고 싶었다. 덜컥 법인은 만들었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경험과 자본 대신 아이디어만 있는 그에게 식료품점의 꿈은 멀고도 험했다.

벽에 부딪힌 배 편집장에게 잡지 발행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울이란 거대 도시에서 혼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겪었던 좌절과 회의감, 보람 등을 풀어내보고 싶었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제로웨이스트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부터 먼저 마주해 보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잡지 발행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기간행물은 언감생심, 첫 번째 간행물을 내는데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난 2월 발간한 1호가 소량만 인쇄된 건 그런 이유였다. ‘이게 과연 팔릴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인쇄된 잡지는 한 달 반 만에 모두 다 팔렸다.

“작은 서점에는 아직 재고가 있는 곳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배 편집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시작의 작은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 6월 두번째 잡지가 발행됐다. 1호보다 두 배 많은 부수를 인쇄했다. 매거진 ‘쓸’은 네이버 스토어팜과 독립서점 등에서 판매된다.

매거진 쓸은 기획부터 취재까지 배 편집장의 노고가 스며들어 있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매거진 쓸은 기획부터 취재까지 배 편집장의 노고가 스며들어 있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잡지를 통해서 사람들과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콘텐츠를 접하는 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는 게 고무적이죠. 굉장한 파급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이런 운동이 확산하면 점차 생산·유통을 담당하는 마트 등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재래시장에 가면 비닐봉지가 편한데 왜 안 받느냐던 상인들이 지금은 제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는 배 편집장은 지난 1일 ‘플라스틱 어택’ 행사를 기획하면서 마트의 포장 문제를 새삼 확인했다. 플라스틱 어택이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포장재를 벗겨낸 뒤 카트에 모아 불필요한 포장재가 많다는 걸 보여주는 행위다. 이 행사를 기획한 배 편집장은 “이중포장, 소포장 등 필요하지 않은 걸 없애고 최소한의 포장만 가능하게 하려면 정부 규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카페 일회용컵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그렇게 많지 않던 일회용컵을 지금은 안 쓰는 데가 없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경부와 카페가 ‘자발적 협약’으로 플라스틱컵 사용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실제 환경부와 커피전문점의 자발적 협약은 이미 10년 넘게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돼 왔다. 하지만 그동안 일회용컵 사용은 꾸준히 늘어났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17개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해동안 사용한 일회용컵은 7억6000여만개였다. 3년 새 1억2000여만개가 늘어났다. 

배 편집장은 정부와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온다고 믿는다. 포장용 비닐봉지, 일회용컵, 빨대 등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개인의 편리함과 선호도를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배 편집장이 말하는 제로웨이스트다.

배민지 편집장은 제로웨이스트를 하며 미니멀라이프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배민지 편집장은 제로웨이스트를 하며 미니멀라이프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서창완 기자) 2018.7.6/그린포스트코리아

남들이 보기에 유별난 삶을 살면서 그는 얼마나 변했을까.

“소비 패턴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포장하지 않은 걸 사거나 덜 쓰려고 노력하는 게 첫번째죠. 그걸 넘어서 오래 쓰지 못하는 물건이나 금방 버리겠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안 사게 돼요. 반면 남들이 입던 옷 같은 건 자주 사게 됐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하고 있죠.”

그의 삶은 간소해졌지만, 사업은 점차 확장시킬 계획이다. 현재 강연이나 문화기획 등을 하며 잡지를 만들고 있는 배 편집장의 목표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다. 그렇게 조금씩 영향력을 키워가고 싶은 게 그의 야심찬 꿈이다.

“한 사람의 실천은 정말 작은 일이죠. 티도 안 나요. 내가 10개 쓰는 걸 1개 줄인다고 달라질까 고민이 되죠. 근데 모이면 큰 힘이 돼요. 하나씩 줄여나가고, 매일 최선을 다해 실천한다면 더 나은 제로웨이스트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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